[서봉대의 정가산책] 측근 비리 못 끊은 이유는...

뉴스1 제공 2014.10.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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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는 출범과 함께 부정부패 척결, 사정의 칼을 휘둘렀다.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근본적으로 뿌리뽑겠다"고 공약했었던 박근혜 대통령 역시 취임과 함께 '신뢰받는 정부'를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박 대통령은 공직비리 척결차원에서 특히 김영란법안(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의 조속한 입법화를 거듭 당부하고 있다.



이달 초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여야가 정치개혁, 정치혁신을 하겠다고 하는데 김영란법이 통과됐을 때 진정한 개혁의 의지와 그 첫걸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100만원이상 금품을 받은 공무원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불문하고 3년이하 징역에 처하는'데 초점을 맞췄으며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더욱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26일 광주시의회에서 "김영란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News1 2014.08.26/뉴스1 © News1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드러났듯 대통령의 부패척결 선언은 오히려 정권을 옥죄는 부메랑이 돼버렸다. 대통령 주변인사들이 잇따라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면서 정권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던 것이다.



#김영삼(YS) 정부는 1993년 2월 출범과 함께 부정부패 척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2월27일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재산을 자진 공개한 뒤 "공직자 재산공개는 우리 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이라며 집권당이었던 민자당 의원들을 겨냥, 공개를 압박했다. 결국 재산형성과정에 논란을 초래했던 김재순· 박준규 전·현직 국회의장은 정계를 은퇴하거나 의장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뒤이어 공직자 재산 공개제도가 도입돼 총리 장·차관 국회의장 국회의원 등의 재산공개가 이뤄졌고 고위 공직자들의 구속사태도 잇따랐다.


YS 정부는 재산공개에 이어 정경유착 근절 차원에서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해야 한다는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했다.

취임 첫해의 이같은 개혁조치에 힘입어 YS의 여론 지지율은 80%를 넘어설 정도로 치솟았다. 임기중반에도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정부 임기 말인 1997년 2월 아들 현철씨가 한보그룹 부도사태와 맞물린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구속됐으며 YS는 결국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과 박희태 국회의장이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 전 대통령 자택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News1


현철씨는 당시 소통령 혹은 황태자로 불릴 만큼 막후의 실력자로 꼽혔으며 여당 중진의원들도 함께 한보비리사건에 연루됐다.

YS는 이보다 한해전 측근인 장학로 청와대 제 1부속실장의 권력형 비리사건때문에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김대중(DJ) 정부도 출범 2년차인 1999년 9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반부패특별위원회를 설치, 부패와의 전쟁에 나섰다. 이보다 한달 전엔 부패방지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같은 해 3·1절 기념식에서 "정경유착,관치금융,부정부패를 일삼는 일을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두 달후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이 정부 고위 인사 부인에게 고가의 옷을 상납했던 옷 로비 사건이 폭로됨으로써 야당측 공세는 물론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까지 고조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상 처음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DJ는 임기후반인 2001년 부패방지법을 제정하면서 "부패를 그대로 두고 우리가 국가발전을 기대한다든지, 21세기 세계일류국가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부패방지위원회가 설립됐으며 돈세탁방지법도 제정했다.
한광옥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김대중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대한민국의 미래" 토론회에 참석해 김홍업 전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2.10.17/뉴스1 © News1


하지만 이듬해 차남 홍업과 삼남 홍걸씨가 잇따라 비리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장남 홍일씨도 노무현 정부때인 2003년 비리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최규선 게이트'까지 터졌다. DJ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던 최규선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던 것이다.

결국 DJ는 "자식들과 주변 인사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에 무어라 사과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국정에만 전념하기 위해 탈당한다"는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부패없는 사회'를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노무현 정부도 취임과 함께 대통령령으로 공무원행동강령을 시행했다. 부패방지법에 근거해 마련된 이 강령은 최초로 법적구속력을 갖춘 공무원 윤리규범이 됐다.

이듬해엔 대통령 직속으로 반부패기관협의회를 구성, 대통령을 의장으로 부패방지위원장과 관련부처 장관 등이 참여한 가운데 국가차원의 부패방지대책을 수립·추진했다.

또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총리 기구에서 대통령 기구로 격상시켰으며 국가청렴위원회(부패방지위 후신)가 부패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측근 비리가 터지기는 이전정부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임기초반부터 청와대 측근 비리의혹들이 잇따라 터지는 바람에 노무현 대통령은 수차례나 대국민사과를 했다. 최도술 총무비서관의 금품 수수 의혹,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의 선앤문 불법대출 개입 의혹, 양길승 제1부속실장의 금품 수수 및 로비 의혹 사건 등이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선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특검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영원한 집사' 최 전 비서관의 비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2005년 2월 국회에서 취임 2주년 연설을 갖고 "돈으로 하는 부정부패는 제 임기동안 확실히 해소해 나가도록 하겠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경쟁에서 불리한 경우는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자료]故 노무현 전 대통령 형 노건평씨// 지난 2008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와 관련한 알선수재 혐의로 소환,영장실질심사,구속 되는 노건평씨. 머니투데이 DB 2012.05.17/뉴스1 © News1
그러나 '봉하대군'으로 불렸던 노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대통령 임기말 세종증권 인수 로비에 개입한 혐의로 200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박연차 게이트'도 불거졌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정부때 정·관계 인사들에게 수십억 원의 금품을 건네고 수백억 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구속됐던 사건이다.

노 대통령 딸 정연씨도 미국 아파트 매입대금을 불법송금한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야 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출범과 함께 공직자 부패척결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건설·건축, 세무, 수사·법조, 보건·위생, 조달 등 5대 부패분야를 설정한 뒤 특별감찰단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10년엔 특히 토착비리, 교육비리, 권력형 비리를 3대 비리로 규정하며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영일대군'으로 불렸던 이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임기말 저축은행 로비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된 최초의 사례였다.
저축은행에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11일 새벽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 차에 오르고 있다. 2012.7.11/뉴스1 © News1


한해전에는 이 대통령 사촌처남인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저축은행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혐의로 실형을 받았으며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원전 비리 혐의로 잇따라 실형을 받았다.

이들외에도 측근인 은진수 전 감사위원과 김희중 전 청와대 제 1부속실장, 오랜 친구였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도 비리에 연루돼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임기말 측근·친인척 비리가 잇따르자 이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했으며 2013년 2월 퇴임연설에서까지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정부를 간절히 바랐지만,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머리를 숙여야 했다.

이처럼 부패와의 전쟁이 결과적으로 정권까지 뒤흔든 양날의 칼이 돼버렸던 이유는 뭘까?

'제왕적' 권력에 취했기때문일지 모른다. 대통령의 측근이거나 친인척이라면 이 정도 칼날은 비켜갈 수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정부 역시 부패척결 그 자체보다 국민적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관료사회를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치중했을 수 있다. 부패척결에 나섰던 때는 새 정부가 안착하기 이전인 임기 초반이었던 것이다.

이때문인듯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친인척· 측근 구속이라는 악순환만은 끊어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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