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은 행복의 적, 세상만사 있는 그대로~

머니투데이 권성희 부장 2014.10.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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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판단은 행복의 적, 세상만사 있는 그대로~


별다른 일 없이 비슷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쏟아지듯 밀어닥쳤다. 처리하고 대처해야 할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고 지혜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의 홍수 속에서 새삼 2가지를 느꼈다. 첫째, 비슷비슷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 어떤 일이나 사건이 아무리 감당 못할 만큼 어마어마해 보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일이 부정적으로 끝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한 뒤에 나온 결과라면 좋고 나쁘고 관계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베스트셀러 소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100세 노인 알란이 엄마에게 배운 인생 철학은 귀 담아 들을 만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좋고 나쁨을 가리지 말고 세상만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의미다.

100세 노인 알란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해서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며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끌려가 거세당하고 어찌어찌 옛 소련에 갔다가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역에 동원되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으며 세상을 유랑하는 인생을 살았다.



이렇게 요약된 알란의 인생은 무척 불행해 보이지만 알란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 좋고 나쁨의 판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상황이 닥치든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낙천적으로 그 상황 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알란의 삶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상황에 대한 가치 판단이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든 본능적으로 이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먼저 따진다. 그 일이 좋은 일이라는 판단이 들면 기뻐하고 나쁜 일이라는 판단이 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인 이상 살아가면서 이 일이 내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어난 일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인생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만들어내는 긴 흐름을 보는 장기적인 시각을 갖는다면 일상사의 일희일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불행한 둘째 이유는 오늘을 살지 않고 어제, 혹은 내일을 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난 일을 일어난 그대로 흘러 보내지 못하고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후회하고 상심한다. 과거가 좋았더라도 문제다. 좋았던 과거와 과거보다 못한 현재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불행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뿐만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의 일에 대해서도 미리 지레짐작으로 걱정하며 불행해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는 흘러 보내고 오늘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미래는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오늘 최선을 다한다면 인생이 그리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과거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삶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세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 그 자체는 좋다. 배려하고 격려해주려는 관심이야 사회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윤활유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비교를 위한 관심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나는 이게 없는데 쟤는 있네? 나는 어디 사는데 쟤는 강남 사네? 나는 이류 대학 다니는데 쟤는 명문대 다니네? 나는 이 일을 하고도 별로 평가도 못 받았는데 쟤는 그깟 일하고 부장 칭찬까지 들었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자신에게 비수로 돌아와 시기와 질투를 낳는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면 아예 관심을 끊고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는 것이 좋다.

고백하자면 한 때 아이 친구들은 무얼 배우고 어떤 학원에 다니고 어떻게 팀을 꾸려 무슨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시험을 내 아이보다 잘 봤는지 못 봤는지, 방학 때는 뭘 하는지 무지무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아이 친구들에 대한 불 같은 관심은 그러나 순수한 사랑이라기보다 나의 아이와 비교하기 위한 그릇된 목적의 관심이었다.

이 궁금증은 때로 비죽비죽 입 밖으로 흘러나와 노골적인 질문으로 터져버릴 듯했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 셌던 덕분에 간신히 꾹꾹 눌러 참을 수 있었다. 궁금증을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다가 결국엔 아예 아이 친구들에겐 관심을 끊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이 친구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자 그 때 비로소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내 아이는 내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원하는 것을 하자. 내 아이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배우고 놀고 경험하도록 하자.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성공에 필수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돼 있고 세상만사 그 자체일 뿐이다. 수많은 일들과 사건사고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하고 성실하게 해나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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