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해진 광화문 광장…세월호 유가족 "힘이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2014.10.0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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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타결 항의' 야당 천막도 철거

1일 찾은 서울 광화문광장/ 사진=김유진 기자1일 찾은 서울 광화문광장/ 사진=김유진 기자


1일 찾은 서울 광화문광장은 화창한 날씨가 서러울 만큼 한산했다. 전날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을 타결한 뒤 유가족들도 국회로, 경기 안산으로 많이 가 버려서 이제는 허전하게 비어버렸다. 이날 병원에서 잠시 나와 광장을 지키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47)가 말했다.

"46일동안 단식을 했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죠. 우리도 동력을 잃어버렸지. 이제 단식도 끝났고…."



46일째 지속하던 단식을 중단하고 상태가 많이 호전된 김씨는 이제는 삼시 세끼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한 달 넘게 유가족들을 대신해 단식농성을 이어가는 종교계 지도자들의 손을 부여잡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김씨는 비어있는 광화문광장을 허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47)/ 사진=김유진 기자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47)/ 사진=김유진 기자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수백명이 모여 밤새 텐트를 치고 농성을 이어갔던 광화문광장이지만 이날은 40여명의 시민들이 남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횡단보도 길목에 10명 정도가 서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세월호 침몰 직후 진도 팽목항에서부터 이날까지 계속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는 세 아이의 엄마 조미선씨(49)는 "이제는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세월호 성금 반환운동'을 하고 있는 보수단체, 가끔 와서 '왜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냐'며 분노를 쏟는 시민 등 국민들보다 오히려 여행을 온 외국인들이 더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씨는 "한 아르헨티나 사람의 경우 자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어머니들이 35년간 투쟁해서 결국 권리를 되찾은 적이 있다며 응원을 해 주고 가더라"며 "지금 서명운동을 받고 있는데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로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19일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이 쓰던 광화문광장 천막. 유가족들이 1일 오전 천막 내 설치물을 철거했다./ 사진=김유진 기자 지난 8월19일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이 쓰던 광화문광장 천막. 유가족들이 1일 오전 천막 내 설치물을 철거했다./ 사진=김유진 기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가족들에 대한 여론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상황이 어쩔 수 없기에, 이제는 정치권에 기대할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날 아침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8월19일 김영오씨를 따라 동조단식을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차려놓았던 당 천막도 다 치워버렸다.


이날 오전에 이학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와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가족들이 이 사과를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상황실 관계자는 "아침에 유가족들과 합의해서 새정치민주연합 천막 안에 있던 현수막과 테이블 등을 다 치워버렸다"며 "여당도 밉지만 우리가 야당을 더 미워하게 되는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종교계와 문화예술계 관계자들, 세월호 참사를 아파하는 시민들이 이들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있다. 낮에는 시민 두 명이 오리털 침낭 6개를 가지고 광화문광장을 찾아와 "가을이 와서 밤에 추우니 이걸 쓰시라"며 전달하고 가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응원하며 뜻을 함께하는 문화예술계 관계자들/ 사진=김유진 기자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응원하며 뜻을 함께하는 문화예술계 관계자들/ 사진=김유진 기자
종교인 천막을 지키고 있던 한 목사는 "다른 힘은 못 보태더라도 종교계가 이들 약자들을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특별법이 타결되든, 정치권에서 어떤 얘기가 나오든 간에 우리는 유가족들의 뜻에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유가족 두세 명과 함께 광화문광장을 매일 지키고 있는 단원고 학생 고 오영석 군의 아버지 오병환(42)씨는 "생업이 있기 때문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써 주고 계셔서 감사하다"며 "국민들이 모아주는 힘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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