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작업 재개···'IBM vs 유닉스' 향배는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진달래 기자 2014.08.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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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그룹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징계 절차가 마무리됨에 따라 그동안 중단됐던 KB국민은행의 주 전산기 교체 작업이 재개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주 전산기 교체시기를 놓친 국민은행으로선 금전적 손해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위는 22일 새벽까지 마라톤 회의 끝에 주 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통제 부실건과 관련,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해 각각 '주의적 경고'인 경징계를 결정했다. 또 주 전산기 교체 논란과 연관된 임직원들도 감봉부터 중징계까지 다양한 수위의 징계를 받았다.



앞서 국민은행 이사회는 지난 4월 24일 주 전산기를 기존의 IBM 메인프레임을 유닉스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결의하고, 유닉스 체제의 IT아웃소싱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 제안서를 접수받는 절차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이 유닉스로의 교체 결정 근거에 오류·왜곡이 있었다는 감사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고, 이 행장이 이를 바탕으로 유닉스로의 교체 결정을 재고할 것을 이사회에 요구했지만 사외이사들이 거부했다.

결국 이사회는 기나긴 갈등 끝에 5월 30일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수검중인 점을 고려해 이 검사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유닉스 기종으로 전환하는 절차의 진행을 잠정 보류한다"고 결정했다. 또 사외이사들이 한국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안건을 직접 마련, 이 행장의 반대에도 통과시키면서 반목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금감원이 주 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오류·왜곡 보고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한 다수 임직원들에 대해 중징계를 확정한 것은, 사실상 정 감사의 감사보고서를 인정한 동시에 이 행장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김재열 KB금융지주 전무(CIO)와 국민은행의 전략·IT담당 임원 등은 중징계가 결정됐다.

이 행장은 징계 사태 직후 최우선 추진 과제로 주 전산기 교체 작업을 꼽았다. 그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산기 의사결정을 하다 중단됐으니 이사들과 의논해 끌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또 이날 오후 경기도 한 사찰에서 KB금융그룹 대표·임원진이 참여하는 템플스테이 자리에서도 "금융감독원이 (유닉스 교체 근거의 왜곡·오류에 대해)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징계를 결정한 것"이라며 '금감원이 은행장의 (유닉스 교체 결정 재고) 주장의 당위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행장은 또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과 유닉스 시스템으로부터 모두 제안을 받자'고 제안했다 보류된 5월 말 이사회 안건에 대해 "당시 이사회에서 금감원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류하자고 결정한 것"이라며 "결과가 나온 만큼, 제가 제안한 안도 의논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감사도 이날 출근길에서 "주 전산기 교체 건은 IBM 체제나 유닉스 둘 중 어느 쪽으로 가자고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평가 절차를 거치자는 의견이었다"며 "과거 절차(유닉스 교체 결정)에 대해 금감원이 징계를 내려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 내린 만큼 처음부터 검토해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외이사들은 금감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대신 한 사외이사는 "지금까지 이사회의 결정에는 절차·내용적으로 문제점이 없었기 때문에, 금감원 결과가 나왔다고 논의 과정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IBM에 대한 공정위 제소 역시 계약기간 후 지나친 할증료에 대한 지적이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해 완전한 갈등 해소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높아 보인다.

한편 IT업계는 이미 주 전산기 교체시기를 놓친 국민은행이 금전적 손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통산 주전산기 교체작업은 1~2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한국IBM와의 메인프레임 계약 만료 기한인 내년 7월까지 교체를 완료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유닉스로 주전산기 변경을 추진하면, 계약 만료일 후 IBM에 교체작업이 끝날때까지 월 89억원 사용료를 내야 한다. 계약기간에 냈던 사용료(26억원)의 세 배 이상이다. 이밖에도 유지보수 관련 단기 계약을 맺게 되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통상 5년 이상 장기계약을 하기 때문에, 단기 계약시 그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국IBM 메인프레임을 재계약한더라도 추가 비용이 나가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유닉스 전환 사업에 공을 들였던 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닉스 전환 BMT(성능검증)에 참여했던 협력업체들은 해당 비용을 보상받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례없던 소송전이 되겠지만, 국민은행의 문제가 명확하기 때문에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IBM 메인프레임에 대한 종속성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IBM이 독점적으로 메인프레임을 공급하기 때문에 계약 기간 동안에도 고객사에 대한 수시 점검을 통해 다양한 비용을 묻기도 하고, 유지보수비율을 정할 때도 입김이 센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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