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 톡톡] 할아버지가 며느리 집에 간 까닭은?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2014.08.20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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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의 컬처 톡톡] 할아버지가 며느리 집에 간 까닭은?


막내 손자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세계 160개 나라에 자손들이 있고 자손들마다 바람 잘 날이 없어 늘 고뇌하신다 했다. 한 집에 4일만 가도 2년에 한 집씩인데 근 80세 할아버지가 9000km 떨어진 막내 손자네 집에 오신다고 했다. '우리 집이 문제가 많아서일까? 다른 집들도 문제는 많은데. 할아버지를 그리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시복하시러 오시는 건가?'

할아버지 며느리는 정성껏 할아버지를 맞았다. 할아버지가 대단하신 분인지 동네와 인근 마을에서도 어마무시하게 왔다. 할아버지는 우리 손자 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자동차 공장 다니다 해고된 셋째 형, 잘은 모르지만 젊었을 적 실종됐다 어느 날 초췌해 돌아온 고모, 군사 기지 건설에 반대하다 말을 잊은 넷째 누나, 그리고 무엇보다 여고생 조카를 배 사고로 어이없이 잃은 다섯 째 형을 많이 위로해주셨다. 다섯 째 형은 지금도 밥을 먹지 못한다. 엄마는 사고 후 한 번 눈물을 보였을 뿐 그 뒤로는 말이 없다. 막내 손자는 이상했지만 더 묻지는 않는다.



세상엔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 고모는 이제 얼마 못 사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고모를 아프게 바라만 보신다. '생각보다 할아버지가 힘이 없나보다.' 막내 손자는 생각했다. 돈이 많고 힘도 센 첫째, 둘째 형은 사업 때문에 바쁜지 나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도 그들을 찾지 않고 "너희 주머니 안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가지지 말라"고만 전하라 하셨다. 정성으로 챙기는 며느리를 할아버지는 온화한 얼굴로 바라보셨지만 눈으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마음을 열어 받아들여야 한다.'

동네 똘똘이 아이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잘못에 침묵하지 말라'고 어려운 말씀도 주신 할아버지 이름은 Servus Servorum(종들의 종) 프란치스코. 아주 옛날 훌륭하셨던 아시시의 성(聖) 할아버지 이름을 쓰신 거라고 했다. 젊어서는 가난한 자들과 아픈 자들과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신 분이라고 했다. 막내 손자는 과거는 잘 모르지만 그분이 우리 할아버지란 게, 자신이 의롭고 힘센 가문의 자손인 것에 가슴이 벅찼다. 집 분위기도 뭔가 다른 광채가 나는 것 같고 동네 많은 분들은 할아버지와 잠깐 마주하고도 눈물을 흘리셨다. '이게 할아버지의 참 힘일까!'



할아버지는 이제 가셨다. 천년 세월이 흐른 후 또 오시려나. 고모는 마지막일 눈물을 흘리고 있고 다섯째 형은 할아버지가 남기신 노란 리본 편지를 묵묵히 보고 있고 막내 손자는 아직 오지 않은 첫째, 둘째 형에게 전해 주라는 성(聖) 할아버지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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