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권위를 내려놓고 이웃처럼 다가가는 따뜻한 인간미는 부수적인 '선물'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를 향해 진실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젊은이들에게 실천적 삶의 자세를 알려준 교황의 행보. 3박4일간 보여준 교황의 행보를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五感)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교황은 입국 직후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세월호 참사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15일에는 삼종기도를 통해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존엄한 인간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도록 간청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교황은 정작 우리 스스로가 외면한 우리들의 문제를 놓치지 말고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부와 명예가 아니라 평화와 우정,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수십년만에 엄청난 물질적 번영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과 외로움, 남모를 절망감에 고통받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교황은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돌아보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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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각…약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교황을 향해 부르짖었다. 34일간의 단식 중인 그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담겼다. 그 순간 교황은 퍼레이드 차량에 내려 김씨 앞에 섰다. 그리곤 김씨의 손을 움켜쥔 채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김씨는 교황의 손 위에 이마를 맞대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교황은 김씨의 호소를 묵묵히 경청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이 담긴 편지까지 받아 들고 한참이나 김씨를 바라봤다.
교황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만이 아니었다. 지난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아시아 청년 대회에서는 실업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울부짖음에 화답했다. 이들의 고민이 담긴 뮤지컬 '돌아온 탕자'가 공연될 때는 직접 무대 위에 앉아 청년들과 호흡하기도 했다. 17일 방문한 충북 음성군 사회복지시설 ‘꽃동네’에선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 같은 교황의 행보는 약자들의 외침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를 뒤돌아보게 했다. 정치권의 정쟁 속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바라는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돌 때, 청년 실업과 장애인 문제 해결을 바라는 목소리 또한 공허하게 울려퍼질 때, 교황은 그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외침을 듣고 아픔을 공감하고 손을 잡아줬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해야 합니다." 교황의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 후각…‘사제는 양 같은 냄새가 나야 한다’
로마의 주교이자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인 교황은 교회가 본분을 다하도록 개혁해 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 교황은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한국 수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망친다”며 수도생활의 청빈성을 강조했다.
지난 15일 서강대학교 사제관을 방문한 교황은 한국관부 예수회 신부 및 수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제가 아니라 사목자가 돼야 한다"며 "보통의 사목자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사목자가 돼 달라"고 간곡히 말했다. 또 14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한국 교회가 번영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 가운데에 살고 일하기 때문에 특별한 도전들이 제기된다"며 사목자들이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들과 격의없는 태도로 만났다. 반면 기득권인 세속화된 교회와 물질주의에 물든 성직자들을 향해서는 날카로운 비판과 과감한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
◇미각…교황청 대사관 직원식당에서 식사
가난한 자에 대한 교황의 관심과 세속적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은 교황의 언행 곳곳에서 드러났다. 교황은 "어떻게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이 버려지는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는 어록을 남긴 바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교황의 77번째 생일에는 성 베드로 성당 인근 노숙자들을 초대해 아침식사를 같이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청와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 자리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 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한다"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식사를 통해 하루 세 번 표현되는 교황의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 고통을 나누기 위해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태도는 비(非)카톨릭 신자들까지도 자발적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는 평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돼야 한다"는 교황의 발언이 공허한 외침에 그치지 않고 무게감을 갖고 감동을 일으키는 이유다.
◇촉각…만나는 아기들마다 이마에 뽀뽀 '쪽'
교황은 남녀노소,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신체적으로 접촉함으로써 '연대'를 이루었다. 교황은 16일 꽃동네를 방문해 "신앙의 풍요로움은 사회적 신분이나 문화를 가리지 않고 우리 형제자매들과 이루는 구체적인 연대로 드러난다"며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없기'(갈라 3:28)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호팀과 방호벽을 넘어 손을 뻗는 사람들을 만나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황은 15일 솔뫼성지에서 "모두가 평화와 우정을 나누며,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약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접촉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라는 것은 교황이 한국 방문을 통해 꾸준히 전한 메시지다. 항상 세상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라고 말해온 것처럼, 교황은 본인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방호벽과 교황직의 권위를 벗어버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보듬으며 축복했다.
이런 교황의 행보 덕에 방한기간 동안 비천주교도들이 가진 편견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많은 이들이 교회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