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펀드매니저 '사표 봇물'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2014.08.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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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톤, 브레인, 한국밸류 등 30대 매니저 퇴사 잇따라···"창업하겠다"

30대 초반 펀드매니저 '사표 봇물'


자산운용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30대 초반 펀드매니저들의 사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사표이유는 '창업'이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이룬 스타급 선배 매니저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일가(一家)'를 이뤄보고 싶다는 것이다. 힘들게 키운 후배들의 출가를 보는 선배 매니저들의 심경은 섭섭함 반, 걱정 반이다.

◇30대 초반 매니저, 창업사표·이직 잇따라=10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트러스톤자산운용에서는 최근 펀드매니저 L모씨가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펀드매니저인 J모씨도 퇴사를 준비 중이다.



브레인자산운용은 5명의 운용관련 인력이 이탈했고 한국밸류자산운용에서도 30대 펀드매니저 4명이 퇴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부분 30대 초중반 매니저들인데, 자수성가한 선배 펀드매니저 CEO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창업을 생각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을 퇴사하는 2명의 펀드매니저는 자문사나 헤지펀드 부티크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0대 초반과 중반인 두 사람은 서른둘 나이에 IMM투자자문을 창업, 굴지의 자산운용사를 일군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에게 큰 자극을 받았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한국밸류운용의 주니어 매니저들도 의기투합해 창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며 "올해 초 사학연금에서는 30대 초반 펀드매니저가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퇴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브레인자산운용은 이직이 많았는데 각각 VIP투자자문, IBK자산운용 등으로 둥지를 옮겼다"며 "일부는 펀드매니저를 그만두고 업계를 떠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꿈꾸는 롤 모델은 황성택 사장,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사장처럼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자문사를 창업, 운용사로 전환해 부를 일군 이들이다. 20대에 창업해 굴지의 자문사를 키워낸 김민국·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브레인 출신 원종준 라임투자자문 대표 등도 동경의 대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 초까지 중소형주 장세가 펼쳐진 덕에 중소형주 펀드를 주로 맡아온 주니어 펀드매니저들의 수익률이 좋았다"며 "최근 1~2년 동안 우수한 성과를 기록하며 쌓인 자신감이 창업의 꿈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자기 회사를 창업하면 회사의 불필요한 간섭 없이 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후배들이 내민 '사표'를 받아 든 선배 펀드매니저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수년간 공들여 키워놓은 후배들에 대한 섭섭함도 있지만 일단은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A사 주식운용본부장은 "펀드운용은 펀드매니저로서의 사명감, 고객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며 "젊은 매니저들은 창업으로 돈을 벌기 위한 학습 정도로 생각하고 쉽게 그만두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천한 경력을 바탕으로 창업을 해봤자 99%가 망할 뿐…"이라며 말을 흐렸다.

다른 자산운용사 본부장도 "VIP투자자문 최준철·김민국 대표의 창업 스토리는 매우 인상 깊지만 10년에 한 번 나올만한 극히 드문 사례"라며 "최소한 10년 정도는 회사에서 배워야 철학을 갖춘 운용 실력을 갖출 수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성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근 금융 감독당국의 자산운용사 일제감사가 이뤄지며 근무여건이 악화된 것도 펀드 매니저 이탈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형사에서 당국의 눈길을 의식하며 일하기보다는, 작더라도 자신의 회사에서 자유롭게 자산을 운영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감사를 통해 대형사 펀드매니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졌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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