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199만弗··· 한국 인정받은 그날, 여전히 가슴 떨려"

머니투데이 대담=신혜선 문화부장 기자, 정리=이언주 기자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2014.08.1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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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투명한 미술경제 위한 옥션 역할 커질 것"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사진=홍봉진 기자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사진=홍봉진 기자


"지금도 기록적인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어요."

2012년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현장.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세 여인'(65.5×50.5㎝)이 198만6500달러(약 22억4000만원)에 낙찰되는 찰나였다. 추정가 60만~80만 달러로 출품된 이 유화작품은 결국 예상가의 2~3배를 훌쩍 넘겼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53)은 여전히 가슴 떨린다는 듯 두 주먹을 꾹 쥐고는 그날을 회상했다. "드디어 100만 달러를 깨는 기록을 세운 것이었다"며 "한국 작가들이 얼마나 훌륭한 작업을 많이 함에도 우리 시장이 작다보니 해외에서 그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앞으로 이 부회장의 고민과 서울옥션이 풀어야할 숙제가 들어있다.



지난 20년 동안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일했던 그가 관계사이자 코스닥 상장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 대표이사 겸 부회장으로 취임한지 3개월째. 그는 서울역 맞은편 옛 대우빌딩 외벽을 세계에서 가장 큰 '미디어 캔버스'(100x78m)로 만들어 영상작품을 선보인다거나 현대백화점과 미스터피자와의 아트프로젝트, 디큐브시티의 작품설치 등 기업과 아트콜라보레이션(예술협업)을 적극 추진해 성공을 거뒀다. 뿐만 아니라 명사들의 미술모임인 '가나문화포럼'을 10년째 운영하며 CEO(최고경영자)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소통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새벽 5시면 눈을 떠 운동을 하고, 일찍 출근해 회의를 주재한다. 등산을 즐기며 흠뻑 땀 흘리는 걸 좋아한다는 그의 열정과 에너지는 언제나 생생하고 다부지다. 그는 "나이 50이 된 이후 자신감이 더 붙었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이젠 노련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국내 미술경매시장에서 첫 여성CEO의 탄생이다 보니 더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엔 또 어떤 모습으로 미술시장에 영향을 줄까.

"갤러리를 운영하다가 경매사로 온 이유 중에 하나는 옥션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란 판단을 이사회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획, 마케팅, 영업을 주로 했던 사람이라 그런 경험을 옥션과 연결시킨다면 회사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본거죠. 미술품 투자도 주식이나 부동산투자처럼 더 대중화되고 주목받게 될 것입니다."

/사진=홍봉진 기자/사진=홍봉진 기자
-미술시장에서 갤러리와 옥션의 역할은 분명히 다를 텐데요.

▶갤러리는 작가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1차 시장이죠. 경매회사는 이미 유통된 작품을 재판매하는 2차 시장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옥션은 갤러리가 위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별적으로 찾아온 손님들의 작품을 감정도 하고, 기획경매를 하기도 하죠. 2년 전 신진작가의 참신한 작품으로 구성했던 '컷팅엣지' 경매를 진행한 이후, 시장에 소문이 나서 갤러리 오너들이 그 작가들과 전속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경매회사는 개별 소비자 중심의 판매는 물론 미술시장 전체에서의 유통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술, 특히 경매는 일반인들에겐 문턱이 높게 느껴집니다. '미술품 구매는 투자'라는 인식 때문에 특정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인지요.
▶네, 미술은 음악과는 또 달라서 대중이 접하기에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갤러리 들어가 보는 것도 어렵게 생각을 하니까요. 그러데 오히려 옥션은 작품마다 추정가격이 정해져 있다 보니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편하게 느끼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랜 고객들 중에는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를 많이 했고, 미술품은 그저 보고 즐기기 위해서 샀는데 결과적으로 미술품이 가장 좋은 투자가 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과 기쁨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한국에서는 미술품 투자나 거래가 부정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어서 관심 있던 소비자들의 의욕마저 꺾어버린 경향도 있지만 미술품 투자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봅니다. 앞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화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갖고 싶기 마련이죠.

-국내 미술경매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요.
▶국내 미술시장은 2013년 기준 4000억여원 규모로 파악됩니다. 이 가운데 경매 시장은 1000억원이 안되죠. 2007, 2008년 10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하락 추세입니다. 본격적으로 미술품 경매가 시작된 것은 1998년 서울옥션 설립 이후로 볼 수 있습니다. 해외에 비교하면 길다 할 수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미술품 매매기관이던 '경성 미술구락부'를 통해 간송 선생께서 경매로 미술품을 구매한 바 있지만, 이후 미술품 거래는 거의 화랑과 상인 위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울옥션 설립이 경매를 통한 미술품 거래의 기점이 됐다고 볼 수 있죠. 현재는 서울옥션과 K옥션, 마이아트 외에 지방의 군소 경매사까지 10여 곳이 있습니다.
서울옥션은 온라인 숫자까지 포함해 3만50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도록을 발송하는 회원만 3500여명이죠. 2008년 7월 1일, 미술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해 미술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봅니다. 그해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인 홍콩에 홍콩법인을 설립하고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우리와 달리 미술이 유망 투자종목으로 뜨고 있다면서요.
▶지난해 세계 미술 경매 시장 거래규모는 125억달러(약 12조9000억원)로 파악됩니다. 이중 중국이 40억7800만달러(34.6%)를 차지했습니다. 4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면서 말이죠. 과거엔 미국시장이 더 컸지만 이제는 변했습니다. 중국현대미술이 성장하는 이유는 돈이 되는 가능성 있는 작가를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한국작가를 더 발굴, 육성하고, 국제무대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옥션이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를 능가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주력할 생각입니다. 우선 한국의 좋은 작가들을 홍콩시장에 소개하면서 또 다른 시장 가능성을 열어야겠죠.

2013 세계 미술 경매 시장 거래규모 /자료출처=아트프라이스2013 세계 미술 경매 시장 거래규모 /자료출처=아트프라이스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 작가들의 위상은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2006년부터 홍콩 경매시장에 소개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아시아 미술시장에서의 유통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작가들의 예술적 감성과 창의성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상업적 가치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우환 화백처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가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데, 앞으로도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스타작가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소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업과 아티스트의 콜라보레이션 등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작가들과 기업의 오너들을 동시에 잘 알고 지내다보니 양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샘솟곤 합니다. 어느 기업이든 기업의 특징과 추구하는 바가 있는 데, 예술과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다가 '이건 어느 기업과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그러면 서로 연결해주기도 하고 함께 기획을 하기도 하죠. 이젠 협업의 시대이고 장르가 허물어진 만큼 앞으로 옥션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간혹 경매회사들이 그림 가격을 올린다는 의혹도 있는데요.
▶서울옥션만 말하자면 공개된 기업입니다. 투명하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일부 잘못된 거래가 있고, 미술계 전체가 부정적으로 비치기도 하죠. 건전하게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얘깁니다. 금액을 한두 번 올려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앞으로도 투명하고 설득력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내년 '옥션쇼'를 중비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계획단계라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진 않았지만 뭔가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고 싶습니다. 서울옥션은 이미 3차례 옥션쇼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는 시장의 저변 확대와 다양한 아이템이 경매를 통해 관심을 받도록 하며, 경매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미술시장을 이끌고 있는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사진=홍봉진 기자섬세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미술시장을 이끌고 있는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 /사진=홍봉진 기자
이옥경 부회장은..

"확실히 부회장님이 오신 이후 회사의 곳곳이 섬세하게 매만져지는 느낌이에요."

서울옥션 직원들은 지난 5월말 새로 영입된 이옥경 부회장에 대해 “여성 CEO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객들의 편리를 위한 작은 부분도 바뀌기 시작했고 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때론 '엄마의 마음' 같다고 얘기했다.

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를 나온 이 부회장은 대학 등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20년 넘게 국내 대표 갤러리인 가나아트에서 일하며 오로지 실무를 익히며 기획과 마케팅, 영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4년 비서실장을 거쳐 2001년부터 14년간 대표이사로서 가나아트를 이끌어온 그가 이번엔 미술경매 시장에 새로운 안주인이 됐다.

가나아트갤러리 관계사이자 코스닥 상장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작가들과 가깝게 스킨십을 나누며 작가 발굴·육성 및 번뜩이는 기획전시, 고객관리 등에 주력하던 그가 이제 앞으로 더 성장할 미술경매 시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이 부회장은 "예전엔 남자로 태어나면 좋았겠단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여자라서 더 섬세한 영역에서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이제는 남녀를 떠나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직원들이나 여성 작가들에게 "당당하게 일 하고,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피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특히 결혼 출산 육아 등의 과정을 포기하지 말고 현명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지금껏 일했던 갤러리와는 조금 다른 미술옥션시장에서 이 부회장의 열정과 기획력이 어떻게 빛을 발할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

박수근 '나무와 세 여인'(65.5×50.5㎝). 2012년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98만6500달러(약 22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제공=서울옥션박수근 '나무와 세 여인'(65.5×50.5㎝). 2012년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98만6500달러(약 22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제공=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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