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탐하지 않는 나체촌의 자유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2014.07.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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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17>러시아 나체촌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은색의 숲'이라는 유원지가 있다. 유원지라고 표현했지만 그야말로 호수와 숲으로 둘러 싸여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러시아에는 말로 다 할 수 없으리만큼 나무들이 많다. 기차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도 드넓은 평원과 나무들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지평선 끝까지 맞닿아 있는 벌판에 녹색의 양배추가 심어져 있는 풍광은 감탄을 내지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무들은 휘어짐 없이 모두 쭉쭉빵빵 건강하게 아름드리 큰 키를 자랑하고 하늘로 뻗어있다.



모스크바 시내 중심에도 공원들이 있으며 더 많은 공원들이 지역마다 구역마다 산재해 있다. 그래서 여름이 시작되면 공원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로에 자동차나 사람들이 다녀도 여성들은 비키니를 입고 타올을 깔고 누워 전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책을 읽거나 선탠을 한다. 남성들도 반바지 차림이나 수영복만 입고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공원을 거닐거나 연인들과 사이좋게 누워 있기도 한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시내버스 종점에 자리 잡은 이름도 유명한 '은색의 숲'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원이고 여름만 되면 만원사례를 이룰 정도로 모스크바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공기 맑은 그 곳 주변에는 아주 비싼 별장들이 아름답게 거대하게 지어져 있어 그런 집들을 겉으로나마 눈요기 하는 것도 즐겁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들은 식구들과 친구들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잔뜩 준비하고 소풍을 온다고 생각한다.



한국 같았으면 공원 일대가 장사와 음식점들이 장사진을 칠텐데 버스에서 사람들만 타고 내리지 가게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먹거리를 준비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래서 숲이 깨끗하게 오래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필자가 놀랍고 반가워했던 것은 '은색의 숲'에서 소나무를 봤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시내 공원에서 소나무를 본 것은 여간 반갑지 않았고 아주 친근하게 다가왔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넓은 호수와 숲으로 둘러 싸인 천혜의 휴양지가 나타난다.

어느 해, 여름, 같은 교회에 다니는 젊은 여자가 한국에 나가지 않고 필자 집에 놀러와 점심을 먹고 하는 말이 "선생님, 혹 아세요? '은색의 숲'에 나체촌이 있는 것을? 저랑 구경 가보실까요"였다. 필자는 깜짝 놀라 "아니 정말이예요?"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라니까요. 선생님은 글 쓰시니까 혹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제가 같이 가 드릴께요."

그 젊은 여자는 점심 먹은 대가로 나체촌 보러 가는데 자기가 보디가드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었다. 필자도 흥미가 생겼다. 아니, 이런 공산주의 나라에, 그것도 벌건 대낮에 피서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나체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기만 했다. 서구 유럽에서나 있을 법한, 영화에나 나올 법한, 히피족들이 창궐할 때 많이 들었던 나체촌이 러시아에 있다니!


필자는 선글라스를 준비(비장한 마음으로)하고 젊은 여인과 의기투합해 '은색의 숲'을 찾았다. 그 곳엔 이미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호수 난간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수영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행복해 보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체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같이 간 분에게 "나체촌이 있기는 있나요?"라고 묻자 그 분은 "따라만 오세요" 하고 앞장 서 걷기만 했다.

사람들이 많은 호숫가를 지나 한참을 걷자 다른 환경이 나타났는데 아주 작은 풀들이 드문드문 나 있는 곳에 모래가 깔려 있었다, 시끌벅적한 호숫가 하고는 사뭇 분위기가 달았다. 대지에 흐르는 공기도 달랐다. 고요함이 있는 것이었다. 윽! 이건 또 무슨 일일까? 모래벌판을 지나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째 이런 일이.

강물이 흐르는 곳을 뒤로 하고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그들은 모두 벌거벗고 있었다. 완전 나체였다. 이런 광경에 어찌 놀라지 않을까. 동행했던 분은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피했고 필자는 선글라스를 낀 채 주저앉아 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책을 읽는 사람, 등에 오일을 발라주는 연인들,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동한 손자 손녀들의 담소, 운동을 하는 무리들,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소란하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모든 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체촌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자기들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이 점이 또한 놀라웠다. 지금 나는 에덴의 동산에 와 있는 것일까. 벗은 것을 전혀 수치스러워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눈길도 주지 않고 평상시처럼 놀고먹는 거였다.

한참을 주시하고 있다가 동행했던 분이 돌아와 필자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진즉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노라고 실토했다. 모스크바에 살은 건 필자가 더 오래되었는데 세상사를 어둡게 산 모양이었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은색의 숲'의 나체촌은 필자에게 상당한 쇼크를 주었고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공산주의 시대에도 나체촌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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