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조련-인재양성' 3박자, '말 선진국' 조건

머니투데이 파리(프랑스)/하노버(독일)=정혁수 기자 2014.07.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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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산업 선진국 프랑스·독일을 가다] 생활스포츠·일자리 창출 선도산업 역할

1988년 제24회 서울하계올림픽이 성공리에 막을 내렸을 무렵.
마장마술·장애물·종합마술 3개종목에 출전했던 한국선수들이 조용히 독일 하노버(Hannover)로 향했다. 이들의 성적표는 '노메달' 이었다.

'승마가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선진 노하우를 익혀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승마 명가' 하노버로 떠난 것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승마훈련 등을 독일 선수들과 함께 했고 이를 통해 기량을 한껏 끌어올렸다. 현지 관계자들이 "우리 선수들과 비교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이 귀국했을 땐 그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말 생산-조련-인재양성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서울 올림픽의 '노메달' 성적표는 4년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또다시 '현실'이 됐다.

베어나 샤데 베르덴 하노버협회 총매니저가 '내수활성화를 위한 말산업 발전방안'을 묻는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다. 이 협회는 독일 최대의 스포츠 말(웜블러드) 민간생산자 단체로, 이 곳에서 인증된 '하노버품종'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승용마 브랜드로 통한다.



그는 "승마는 말 생산, 조련, 인재양성 등 세 축이 균형을 이룰때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며 "한국의 말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이런 선순환 구조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승마 대중화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말산업 선진국인 프랑스·벨기에·독일에서는 승마가 생활스포츠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것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지난 달 28일 프랑스 파리 인근에 위치한 유소년 승마클럽 '아하 드 자흐디 승마장'에서 10~15세 어린이들이 교관의 지도아래 승마수업을 받고 있다./사진=정혁수 기자지난 달 28일 프랑스 파리 인근에 위치한 유소년 승마클럽 '아하 드 자흐디 승마장'에서 10~15세 어린이들이 교관의 지도아래 승마수업을 받고 있다./사진=정혁수 기자


◇저렴한 비용, 체계적인 교육시스템= 지난 달 28일 프랑스 파리 근교 유소년 승마클럽 ‘아하 드 자흐디 승마장’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75ha에 달하는 드넓은 공간에서는 10~15세 어린이 수 십명이 교관의 가르침에 따라 작은 말들을 타고 있었다. 승마장 관계자는 "이곳은 재활승마 등 특화된 승마프로그램이 강점"이라며 "매주 승마 강습 인원만 3000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루홍스 스루씨(47·여)는 “딸이 1주일에 한번 1시간 정도 승마를 즐긴다”며 “말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도 필요하고, 아이들 성격이 차분해지는 등 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승마장에 오면 아이들이 맨 먼저 배우는 게 말똥을 치우는 일"이라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말과 교감하는 게 승마교육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승마클럽 이용 비용은 1년에 600여 유로(80여만원), 한 달에 50유로(약 7만원) 정도다. 지자체에서 일정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해 주고 있어 큰 부담이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과 달리 승마 장비구입도 저렴하다. 개인이 장비 갖추는 데는 조끼와 승마용 장화를 포함해 15유로(약 2만원)면 충분하다.

헬멧과 안장 등 기초장비는 클럽에서 제공한다. 현장에서 만난 비노쉬(12)양은 "5살 때부터 승마를 시작했고 말을 타면서 자유를 느낀다"며 "세상에서 승마처럼 재미있는 스포츠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마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경마매출이 줄고 있는 것과 달리 '나홀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 경마 매출의 98%는 장외발매소(PMU)에서 발생한다. 아메릭 베르매 생 클라우드 경마장 PMU 국제담당 이사는 "불법경마 근절과 세수확대를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온라인 마권 발매를 허용하면서 매출이 20% 이상 신장했다"며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통한 경마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최대의 스포츠 호스(Horse) 민간 생산자 단체인 베르덴 하노버협회에서 지난 2일 승마적합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들이 일반 농가에서 생산된 말과 함께 평가장을 걷고 있다./사진=정혁수 기자독일 최대의 스포츠 호스(Horse) 민간 생산자 단체인 베르덴 하노버협회에서 지난 2일 승마적합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들이 일반 농가에서 생산된 말과 함께 평가장을 걷고 있다./사진=정혁수 기자
◇"말 3마리당 1명의 일자리 창출"=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승마 선진국으로 지난해 말 현재 승마 인구수는 170만 명이 넘는다. 독일 승용마의 총본산은 북부 하노버 지역으로 독일 승용마의 27% 정도가 이곳에서 공급된다. 독일 승용마의 전체 70%는 '하노버 품종'이다. 하노버 품종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승용마 브랜드로, 날렵하고 온순하게 개량돼 승마용에 적합하다.

베어나 샤데 총매니저는 "하노버에는 승마와 관련 연간 10만명이 방문해 3~4일간 머물다 보니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있다"며 "전체 매출규모를 정확히 산출하긴 어렵지만, 관광수익·컨설팅 분야 등 연간 900만~1000만 유로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또 "독일에서는 말 3마리당 1명의 일자리가 생긴다"며 "현재 30만 개 이상의 말 관련 일자리가 있다"고 소개했다.

베르덴 하노버협회는 하노버 품종의 교배와 등록, 혈통·품종관리, 승용마 선발, 경매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1년에 약 1000마리에 대한 경매가 이뤄지고 낙찰 평균가격은 1만4000~1만5000 유로(14일 현재 1유로는 약 1385원)다.

최귀철 한국 마사회 말산업진흥처장은 "해외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말산업에는 분명 큰 격차가 존재하지만 학생체험승마, 승용마 생산농가 육성 등 승용마 생산 인프라를 갖추어 나가면 말 산업 선진국으로의 도약 가능성으 크다"며 "경마가 새로운 국민 여가문화로, 또 말 산업이 국가경제의 신성장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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