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주사위놀이'에 담긴 시대상…'간첩 신고' vs '성희롱'

딱TV 다콘 2014.06.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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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TV]디지털 세대는 모르는, 거의 모든 게임의 역사

편집자주 '주사위 마니아' 다콘 - 어렸을 때만 즐겼던 주사위와 보드 게임, 그 속에 숨겨진 재밌고도 은밀한 역사를 읽어드리는 아날로그 오타쿠입니다.

20세기 초반, 인류는 게임을 대량생산해 돈을 받고 팔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캐주얼게임 중 하나인 '뱀과 사다리 게임'의 상업 버전도 이때 당연히 판매된다.

이름은 'Chutes and Ladders'가 됐고, 떨어지는 뱀을 미끄럼틀로 바꿔서 높은 수준의 아트웍을 추구했다. 이후 이 게임은 세계 어린이들의 일종의 통과 의례가 됐다. 교육 종사자들도 숫자 1~100 개념을 익히기 좋은 도구라고 인정하는 편이다.



'뱀주사위놀이'에 담긴 시대상…'간첩 신고' vs '성희롱'


국내에는 군사정권 시절, 마분지에 인쇄해 20~30원에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뱀주사위놀이'라는 제품이 등장했다. 주사위, 게임 말, 패키지를 생략해 가격을 혁명적으로 낮췄는데, 오늘날에도 보드게임 퍼블리셔 중 ‘Cheapsss’라는 회사가 이 같은 방식의 출판을 주로 하고 있어 유명하다.

20원짜리면 너무 싼 것이 아닌가 싶을 것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눈깔사탕 여러 개를 10원에 살 수 있었던 시절이라 그렇게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고 사라져버렸는데, 현재는 인터넷 등에서 이미지를 찾을 수 있고 인사동에 가면 마분지 인쇄를 재현한 버전을 구입할 수 있다.



'뱀주사위놀이'에 담긴 시대상…'간첩 신고' vs '성희롱'
'뱀과 사다리 게임'이 게임 내에 메시지를 담기 좋다고 언급했는데, 우리나라의 뱀주사위놀이는 가히 프로파간다라 할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너스 전진을 하는 칸은 모두 선행을 한 결과로 그려져 있고, 페널티를 받는 칸은 모두 악행을 한 결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상승하는 이벤트가 사다리 대신 고속도로로 바뀌어 있다.


“야당의 반대에도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붙여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됐다. 야당은 반대 밖에 모르는 것들이다”라는 당시의 강력한 프로파간다를 어린이 놀이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야당은 경부고속도로를 긍정적인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생각했으나 서울과 영남 사이의 철도 등이 비교적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영남 지역으로의 교통 인프라 집중보다는 강원, 호남 지역의 교통 인프라가 더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세부 이벤트를 살펴보자. 먼저 주목할 점은 각자 분야에서 노력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육으로 성공한 사람이 얻는 보너스는 4칸(8-12)에 불과하고, 의사가 되는 사람이 얻는 보너스는 12칸(24-36), 축산업을 일으켜 알부자가 된 사람이 받는 보너스가 12칸(34-46)이다.

이공계열 성공자는 10칸(76-86)의 보너스를 주는데, 이공계의 푸대접은 이때부터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열심히 싸운 군인이 받는 보너스 2칸(90-92)에 비하면 감지덕지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노인에게 길을 잘 가르쳐준 어린이의 선행은 전문 분야 성공과 대등한 평가(12칸, 4-16)를 받는다. 산에 나무를 심은 행동은 20칸(18-38)의 평가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해서 학사모를 쓴 사람은 34칸(32-56)을 올라가 버린다. 정점은 간첩 신고로 표창장을 받은 사람으로 무려 52칸 상승의 인생 역전을 보여준다.

페널티들은 지나가는 개를 발로 차서 물리거나 친구를 때렸다가 깽 값을 물어주는 등 도덕 교과서를 보는 듯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게임 최대 패널티(66–14)가 성희롱을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불장난으로 마을 하나를 태우고 불법 무기를 만들어서 버섯구름을 일으킨 것보다 페널티가 크다. 성희롱에 대한 당시 사회통념을 생각할 때 이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그 외의 이벤트들과 비교하면 더욱 이질적이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뱀주사위놀이'에 담긴 시대상…'간첩 신고' vs '성희롱'
군사 정권 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과 성희롱에 대한 진일보한 생각을 뺀다면 이 작품은 그다지 건전하거나 교육적이지는 않다. 추억도 좋지만, 아이와 놀아주고 싶다면 마트나 완구 매장 등에서 스머프나 자두 캐릭터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으니 그쪽을 사는 것이 좋겠다.

'뱀주사위놀이'에 담긴 시대상…'간첩 신고' vs '성희롱'
그리고 보너스. 추억의 뱀주사위놀이의 이벤트 그림을 싹 날려버리고 그 자리에 원하는 멘트를 적어서 커스텀화할 수 있게 한 특별 파일을 기사 부록으로 제공한다. A3로 출력하면 딱이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편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내려받아 다양하게 만들어보자.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6월 18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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