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엔저, 전차군단 환율우군이 없다

머니투데이 강기택, 서명훈 기자 2014.06.1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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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업체들 엔저 기반해 가격 인하…독일 유로화 약세로 가격경쟁력 배가

원고-엔저, 전차군단 환율우군이 없다


#지난 4월18일 뉴욕모터쇼. 현대자동차가 '신형 쏘나타(LF)'를 미국에 선보인 날 토요타는 더 낮은 가격의 '캠리'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으며 맞불을 놓았다.

'엔저'(엔화약세)에 근거해 수익성이 높아지자 인센티브를 강화하면서 제값받기를 시도하려는 현대차를 봉쇄하고 자사의 판매신장도 꾀하려는 의도였다.



◇일본, '엔저'로 현재와 미래 시장 동시에 잡다=일본업체들의 적극적인 공세는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일본업체들은 최대 판매시장인 미국에서 주요 모델의 가격을 인하하거나 인센티브를 확대하면서 가격경쟁을 주도했다.

가장 공격적인 곳은 닛산이다. 닛산은 지난해 5월 미국시장에서 판매하는 18개 모델 중 7개 모델의 가격을 2.7~10.7% 낮췄다. 닛산의 뒤를 이어 토요타도 지난해 하반기 미국시장에서 모델당 평균 2500달러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이에 따라 2012년 7월 1700달러였던 캠리와 쏘나타의 실제 구매가격 차이가 2013년 12월엔 192달러로 축소됐다.



이같은 기조는 '엔저'가 지속되면서 올해도 이어져 일본차들의 미국 판매량도 늘어났다. 단순히 차만 많이 팔아 점유율만 높아진 게 아니다.

토요타는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에 2조2900억엔(약 23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6년 전 기록한 영업익 최대치와 2012회계연도의 영업익인 1조3200억엔을 모두 뛰어넘는 수치다.

근저에는 '엔저'가 있다. 토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완성차 빅3의 영업이익 중 환차익 비중이 50~60%에 달할 것이란 추산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환차익으로 이익이 급증하자 기존 신경쓰지 않던 인도,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도 상품성은 높였으나 가격을 내린 모델을 투입해 현대·기아차의 주력모델 시장을 잠식한다.

뿐만 아니라 엔저로 돈벼락을 맞자 R&D(연구·개발)와 설비투자도 늘린다.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친환경차 등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확대에 나선 것. '엔저'로 현재와 미래 시장을 동시에 잡는 것이다.

반면 현대·기아차 (118,200원 ▲1,600 +1.37%)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매출은 4200억원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현대차 (249,500원 ▼500 -0.20%)와 ·기아차는 국내시장에서 엔화보다 유로화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일본업체들의 점유율이 하락한 가운데 독일산 차들의 점유율은 올 1~5월 71.6%까지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브랜드와 제품력뿐만 아니라 독일이 유로존으로 묶이면서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유로화가 약세를 보여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한 요인으로 꼽는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였던 마르크화가 지금 존재했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유로화 약세에다 한-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관세까지 낮아져 독일차의 가격경쟁력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고-엔저, 전차군단 환율우군이 없다
◇일본 전자업체도 가격할인 공세=일본 전자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소니와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의 가격할인 공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엔저'를 무기로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TV시장에서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어서다.

소니는 미국에서 UHD TV(초고선명·울트라HD TV)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6999.99달러에 판매하던 65형(인치) 제품의 가격을 3799달러까지 낮췄다. 55형 제품도 4999.99달러에서 2699.99달러로 내렸다. 샤프 역시 70형 UHD TV 제품 가격을 5499.99달러에서 3999.99달러로 인하했다.

TV업계 관계자는 "매장에서 직접 상담해보면 할인된 가격에서 추가로 깎아주는 경우가 더 많다"며 "시장을 지키기 위해 한국업체들도 덩달아 가격을 내려 미국 TV가격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TV업체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빼앗긴 TV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UHD TV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엔저'를 등에 업고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 수준까지 가격을 내렸다. 특히 일본업체들은 방송장비시장을 장악, UHD TV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을 확대하는 편이 유리하다.

UHD TV뿐만 아니라 LED TV(발광다이오드 TV)도 적극적인 가격할인에 나섰다. 다만 일본업체의 가격할인이 시장점유율 상승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 점은 다행이다. 실제로 올 1분기 TV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28.2%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LG전자가 16.2%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소니의 시장점유율은 7.1%로 지난해 같은 기간 5.5%와 비교하면 1.6%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지난해 4분기 9.3%와 비교하면 오히려 떨어진 것이지만 소니의 시장점유율은 1분기가 가장 낮고 4분기가 가장 높은 경우가 많았다.

이를 감안하면 올 연말에는 10%대 벽을 뚫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샤프도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4분기 4.0%에서 4.9%로 높아졌다. 파나소닉도 2.9%에서 3.0%로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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