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와 사랑에 빠진 男…낭만적이지 않은 이유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4.05.3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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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사이언스-47]SF영화 '그녀'(her)를 통해 본 궁극의 Iot…"그녀는 '빅 브라더'였나"

편집자주 영화나 TV 속에는 숨겨진 과학원리가 많다. 제작 자체에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것은 물론 스토리 전개에도 과학이 뒷받침돼야한다. 한번쯤은 '저 기술이 진짜 가능해'라는 질문을 해본 경험이 있을터. 영화·TV속 과학기술은 현실에서 실제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상용화는 돼있나. 영화·TV에 숨어있는 과학이야기. 국내외 과학기술 관련 연구동향과 시사점을 함께 확인해보자.

그녀(Her)의 한 장면/사진=UPI 그녀(Her)의 한 장면/사진=UPI


혹자는 '그녀'(Her)를 신인류의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디지털기기와 인간이 사랑을 속삭인다는 기이한 설정의 멜로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 컴퓨터 운영체제(OS)와 관계를 맺은 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극중 OS인 '사만다' 역을 맡아 목소리 연기를 펼친 스칼렛 요한슨은 지난해 '제8회 로마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스크린에서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 데도 말이다.



'그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편지 대필을 전문으로 한 '아름다운 손편지닷컴'의 직원이다. 아내와 이혼 소송을 진행중인 불행한 처지다. 집에서는 3차원(D) 게임이나 채팅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며 허송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중 그는 개인 맞춤형 인공지능 OS를 구입한다. 그가 OS의 성별을 '여성'으로 지정하자, 자신의 이름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라는 어여쁜 목소리가 들려온다. OS가 인간의 육성으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작품에선 육체만 없을 뿐 하나의 인격체로 비춰진다.



이 OS는 인공지능을 넘어 테오도어와 매우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한다. 사만다는 메일도 대신 읽어주고, 테오도르가 미뤄놓은 번거로운 컴퓨터 작업들을 해결해준다. 테오도르의 목소리만으로도 심리 상태를 모두 알아차리고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이처럼 사만다는 '개인 비서'같은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테오도르와 모든 일상과 희로애락을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나눈다. 어느덧 둘은 연애감정까지 싹튼다. 사만다는 급기야 테오도르에게 "당신을 만지고 싶고, 당신에게 안기고 싶다"며 인간의 몸을 갖고 싶다고 고백하는데...

그녀는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 '제71회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평단으로부터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이 영화를 무척 '불편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문화계와 과학기술계 평이 이처럼 엇갈린 이유는 왜 일까?
그녀(Her)의 한 장면/사진=UPI 그녀(Her)의 한 장면/사진=UPI
고독한 현대인들의 아픔을 보듬고 달래주면서 디지털기기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접근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친구가 따로 필요없는 요즈음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사만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친절한 감시자 '빅 브라더'(Big Brother)가 탄생한다.

스크린 속 사만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진화하는 존재"라고 소개한다. OS가 홀로 특별한 버전 업데이트 없이 고도화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물인터넷(IoT)이 가능한 OS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IoT란 유무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주위 모든 사물끼리 연결되어 사람과 사물 간의 정보를 상호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 및 서비스를 뜻한다. IoT 영역은 넓다. 소위 전력이 필요한 사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적용된다.

로맨스 장르의 영화라서 정확한 묘사는 극상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필시 사만다는 테오도르에 일거수일투족 개인 정보를 주변의 모든 디지털기기를 동원해 감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테오도르가 어떤 상태이며,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귀신같이 알아내는 사만다. 그녀의 이 같은 능력은 지금까지 개발된 ICT(정보통신기술)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지금껏 소개된 기술을 토대로 '사만다 알고리즘'을 파악해 보자.

애플의 경우, 아이폰·아이패드를 통해 사용자 위치를 파악해 왔다. 퇴근길 저녁 7시, A씨가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검색 앱 서비스를 이용해 명동의 유명한 레스토랑을 검색하고 한 참 동안 그 콘텐츠를 읽어 봤다면, 이곳으로 이동했을 확률이 높다. 통신 센서망이 부착된 차를 이용해 A씨가 이동했다면 더 정확한 위치 파악이 가능하다.

팝콘 사이언스 팝콘 사이언스
IoT를 활용한 무인자동차 '구글카'는 당초 자동차와 신호 시스템이 서로 통신망을 통해 연결돼 운전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신호에 따라 운행하도록 개발됐다.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이용자 위치는 계속적으로 추적된다. 이런 기술을 놓고 볼 때 영화 속에서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하루 동선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구글은 안경 형태의 입는(웨어러블) 컴퓨터 '구글 글라스'로 사용자가 보는 게 무엇인지 파악한다. 만일 내가 지나가는 행인의 복장을 뚫어져라 봤다면, 구글 글라스는 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 사이트를 알려준다거나 관련 최신 유행정보를 선별해 소개할 수 있다.

사만다가 구글 글래스에 연결돼 있다면 테오도르가 하룻 동안 보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함께 본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테오도르가 길거리 자판기에서 시원한 이온음료를 사 마셨다고 하자. 이 경우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나이와 성별, 즐겨먹는 음료수 등을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실제로 인텔은 CPU(중앙처리장치) 프로세서를 탑재한 '터치스크린 자판기'를 내놓은 바 있다. 자판기 전면에 설치된 카메라가 사용자 모습을 확인해 연령대와 성별을 추정하고, 음료수를 추천해 줄 수 있다.

이 같은 정보는 자판기 내 내장된 컵퓨터 칩셋에 저장돼 통신망으로 본사까지 연결된다. 만일 사만다가 이 회사 네트워크망과 연결을 시도한다면 테오도르가 중장년의 남성이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시간대 별로 어떤 음료를 즐겨 마셨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목마름을 느낄 때 "**회사의 **에너지 음료 어때"라고 말을 건낼 수 있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은 지난 22일 사용자 주변의 소리를 분석·식별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했다. 이 앱을 실행한 후 음악이나 TV를 보면 짧은 시간 내에 어떤 스타일의 콘텐츠를 즐겨 보고 듣는 지 파악해 이용자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추천해 줄 수 있다. 사만다가 이 데이터망에 연결을 시도한다면 테오도르가 어떤 성향을 가진 인물인지를 추천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대다수의 ICT 전문가들은 "구글이 두뇌 스캐닝 정보를 결합해 사용자의 감정이나 생각, 기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데이터를 내놓을지 모른다"고 전망한다. 글로벌 IT 공룡업체들은 회원들의 라이프스타일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각종 서비스 개발을 앞다퉈 벌이고 있다. IBM은 오는 2017년에는 3억대 이상의 스마트카가 IoT 시대를 열게 될 것이며, 2020년까지 인터넷과 연결된 디바이스 수가 500억 개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기술발전 추세라면 사만다는 단지 영화 속 설정의 OS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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