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아들에 "넌 하숙생이냐 아들이냐" 물었더니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2014.05.28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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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의 컬처 톡톡]

중3 아들에 "넌 하숙생이냐 아들이냐" 물었더니


얼마 전 모 대학교 경제대학원 연례 세미나에서 특강을 했다. 30대 직장인학생들이 대상인 자리였다. 거기서 나는 먼저 영업과 마케팅을 구분했다. "영업은 제품을 파는 것이고 마케팅은 마음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마케팅은 "기업의 자리에 고객을 놓고, 제품의 자리에 욕망을 놓고, 나의 자리에 너를 놓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는 위기는 "고객의 자리에 기업을 놓고, 욕망의 자리에 제품을 놓고, 너의 자리에 나를 놓는" 탐욕과 가치의 전복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서 욕망과 가치, 문화 3개에 대해서 말했다. 욕망은 신과 동물 사이에서 선 인간의 틈이며 가치는 그 틈을 잇는 지향이고 문화는 그 지향을 실천하는 콘텐츠며 과정이라고 했다.



특강이 끝나고 질문이 들어왔다. 자산운용회사 직원과 경제신문 기자 그리고 대학교 보직교수였다. 그분들은 한소리로 물었다. "위기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자산 운용회사엔 영업을 하지 말고 마케팅을 하라고 했다. 경제지 기자에겐 해외 기사를 직구(直購)하는 뉴스 소비자의 욕망을 직시하라고 했다. 한국 언론의 공멸을 막으려면. 대학교 교수님에겐 "씽크 탱크를 만들어 존경과 신뢰를 먼저 얻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답했다.

며칠 뒤 중3 아들과 밤늦게 얘기를 나눴다. 게임을 많이 하고, 아빠가 퇴직을 한 것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걸 꼬집으며 아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는 하숙생이냐, 아들이냐?" 아들이 답했다. "아들인데요." 다시 되물었다. "아빠가 25년간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을 했는데 너는 그동안 수고하셨단 소리를 안 했다. 게임에 빠져 앞으로 네가 도와야 할 것에 대해 묻지 않았고 엄마가 지금 기분이 어떤지 묻지도 않았는데 그게 아들일까?" 아들은 눈만 멀뚱.



나는 중3 아들이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부모 능력을 의심 없이 믿어서 그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나이에도 집을 책임지던 시대가 있었으니까. 긴 얘기 끝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는 하숙생일 것이냐, 아들일 것이냐?" 아들이 답했다. "아들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들이면 어떻게 하겠느냐?". "게임을 끊겠습니다. 엄마 일을 아들로서 돕고 우리 집을 생각하겠습니다." "고맙다." 그 뒤로 아들은 게임을 끊었다. 작은 일 같지만 7년을 싸워 왔던 전쟁이다. 엄마 설거지도 3일을 연속 돕는 체 한다. 그런 아들의 변화를 보면서 나는 며칠을 더 생각했다. '하숙생과 아들'.

그런데 내가 모자랐다. 우리는 본질이 하숙생이다. 우리네 인생이란 연극 무대를 결국 엔 내려와 떠나는 시즌1 배우고 가수 최희준이 노래한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숙생처럼. 아들일 것을 맹세한 아들도 나도 결국 하숙생일 것이다. 누구도 하숙생 삶을 피할 수는 없다. 아프고 허무하다. 그래서 겸손해질 수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네 종류의 하숙생이 있을 뿐이다. 하숙생1은 매일 밤늦게 돌아와 잠만 자는 처지임에도 매사 불평하고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 하며 함부로 한다. 하숙생2는 피 같은 하숙비를 근거로 하숙 정의와 주권을 위해 다른 하숙생과 연대해 주인과 투쟁하고 하숙생3은 다른 하숙집을 조용히 알아본다. 하숙생4는 다음 하숙생을 위해 조심 깨끗하게 사용하고 하숙집 여건을 살피면서 마음을 다해 조언한다.


하숙생 유형에 따라 주인도 4종류 주인으로 튜닝된다. 결국 어떤 하숙집은 매일 시끄럽고 어떤 하숙집은 매일 투쟁하고 어떤 하숙집은 텅 비게 되고 어떤 하숙집은 점점 밝아진다. 끝내 어떤 하숙집이 점점 밝아질지는 정조 영화 '역린'의 중용 23장 대사가 짚는 바대로고 내가 강의에서 말한 마케팅 정의대로 될 것이다. 마케팅은 마음을 사는 것. 국가의 자리에 국민을 놓고 정책의 자리에 민심을 놓고 나의 자리에 너를 놓아라. 내가 적장자 아들이라는 오만은 버려라. 누구든 결국 떠난다.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작은 것에 서로 정성을 다해 살펴야 한다. 그러면 드러나고 밝아지고 생육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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