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이 숭배하는 한국인 3세 '빅토르 초이'를 아십니까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2014.05.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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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11>'자유를 갈구하는' 영혼의 락가수

세상은 온통 녹색 물결이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마다 녹색 숲에 들어선 것 같다.

러시아에도 이렇게 봄이 온다. 러시아의 봄 햇빛은 유난히 밝고 강열하다. 눈이 부셔 하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많이 쓴다. 이런 날씨들이 계속되면 수은주는 급상승하고 거리로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라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급기야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맥주를 들이킨다. 아이들과 여자들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얼굴이 빨간 색으로 물든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이 몰리는 곳이 있는데 바로 아르바트 거리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바흐탄코프 극장이 있으며 크고 작은 무제이(박물관)들이 있으며 러시아 전통수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꽉 차있는 관광명소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인사동 같은 곳이랄 수 있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가끔 머리도 식히고 시내 구경을 하고 싶으면 아르바트 거리를 찾는다. 거기엔 또 우리들이 유일하게 외식을 하는 맥도날드가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어 봤지만 본토보다 훨씬 맛있는 햄버거는 러시아 맥도날드였다. 그래서인지 모스크바에 있는 맥도날드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잘 구워진 사과파이는 맛이 일품이었다.

아무튼 아르바트 거리는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의 천국이었는데 거리의 한쪽 담에 늘 많은 젊은이들이 기타를 가지고 몰려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아르바트 거리의 담벽에 무리를 지어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은 빅토리 초이(최)를 숭배하고 흠모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모임들로 매일 그 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필자도 처음에는 빅토르 초이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한국인 3세로 러시아에서 젊은이들의 우상인 락가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를 음유시인이라고 불렀고 공산주의 시절에도 전 러시아인이 사랑한 가수였다.

옥죄고 자유롭지 못하고 체제에 순응해야만 했던 공산주의 시절에 빅토르 초이는 용감무쌍하게도 반체제적이고 사회비판을 담은 노랫말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인간임을 자각하게 만든 가수였다. 그런 이유로 러시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노랫말은 소련 젊은이들을 향한 외침으로 국가를 변화시키라는 호소를 담고 있었으며 영화를 워낙 좋아해 “키노(영화)”라는 록밴드를 결성하고 왕성한 활동을 했다. 라는 영화에도 출연해 최우수 주연상을 탄 재주 많은 청년이었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2년에 태어나 1990년 죽었으니 28세의 나이로 요절을 한 것이다.

차기 앨범을 녹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처참한 교통사고를 당해 이 음악의 천재는, 영화를 사랑했던 가수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은 전 러시아인들은 비탄에 싸였고 패닉상태였다고 한다. 그를 따라 죽은 사람들도 속출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그의 무덤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으며 무덤의 꽃들은 그의 곁에서 시들지 않았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담벽에도 그를 기리는 많은 글들이 낙서처럼 빼곡히 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너를 사랑해.
너는 죽지 않았어.
너는 내 가슴에 있어.
너의 혼은 영원히 살아있어.

필자는 모스크바에 사는 동안 빅토르 초이의 작은 아버지를 만났고 그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살아있는 동안 많이 우울했으며 반항적이며 삶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상트페테르부르크 서커스단에서 일했다)를 만났던 것도 기억난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시간이 꽤 흘러도 사람들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러시아의 유명 여가수 푸가초바(정치인 이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도 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TV에서 보았다.

택시를 탈 때도 라디오에서 가끔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운율이 너무 세련되었고 나지막히 독백하듯이 토해내듯 그러나 근본적으로 침울하고 적막감이 감도는 노래를 들으면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고 메이는 것 같았다.

그는 누군가에게 속삭이듯 호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면 자신에게 울부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일까. 나를 억누르고 짓누르고 있는 무엇일까. 사랑일까, 사상일까, 이념일까, 증오일까,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라!
영혼의 치유를 갈망하라!

내뱉는 것 같기도 하고 읊조리는 것 같기도 한 그의 혼(魂)이 담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빅토르 초이, 그대는 영원히 살아있으리.

러시아인이 숭배하는 한국인 3세 '빅토르 초이'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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