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김현정 디자이너
이 논문이 재무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이유는 기업이 발표하는 이익은 회계상 이익일 뿐 재무학자들이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근거로 하는 현금흐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무학자들은 노이즈인 회계상 이익이 발표된 후 주가가 요동을 친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이 이상현상은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 대학의 유진 파머(Eugene Fama) 교수마저 어리둥절케 만들었다. 파머 교수는 주식시장의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전통 재무학의 거두이다. 그는 행동재무학의 여러 주장들을 신랄하게 비판해 온 걸로도 유명하다(행동재무학의 여러 주장들은 이론이 없는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꿰어 맞춘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아직도 행동재무학자들의 연구에 비수를 꽂는 말로 통한다).
하지만 이런 파머 교수도 1998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익 발표후 주가표류 현상은 그가 ‘의심하지 않는(above suspicion)’ 유일한 증시 이상현상이라고 인정했다. 행동재무학을 그렇게 부인해 오던 그도 “이것만은 정말 이상하다”고 고백한 것이다. 하지만 기타 행동재무학이 주장하는 가설이나 이상현상은 모두 틀렸다고 부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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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볼과 브라운 교수의 논문은 파머 교수의 효율적 시장가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유일한 논문으로 인정받게 됐다(사실 파머 교수의 효율적 시장가설 논문은 볼과 브라운 교수의 논문보다 2년 늦게 발표됐다).
그리고 1년후 행동재무학의 시조로 불리는 리차드 테일러(Richard Thaler) 교수는 『행동재무학의 종말(The End of Behavioral Finance)』이란 논문을 발표, "아직까지는 행동재무학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머지않아 주류로 인정받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라며 매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테일러 교수의 예견은 그리 빨리 실현되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일류 경영대학엔 행동재무학 교수가 극소수에 불과하고 행동재무학 논문으로는 재무학 톱 학술지에 실릴 가능성이 여전히 낮다. 아직도 많은 (어쩌면 대부분) 재무학자들이 효율적 시장가설에 근거한 전통 재무 이론을 연구하고 있고 행동재무학자들은 계속 비주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행동재무학이 후퇴한 것은 절대 아니다. 테일러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1999년과 비교하면 행동재무학은 지금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서 거부감 없이 받아 들여지고 있고, 또 행동재무학 가설을 주식투자에 적용하는 펀드도 꾸준히 생겨났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예일대 교수는 행동재무학 연구의 공로로 파머 교수와 공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됐다. 결국 테일러 교수의 예견이 너무 앞섰던 것 뿐이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것으로 판명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