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자금성과 천안문으로 알려진 곳. 중국 최대의 도시이자 수도인 베이징. 세계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만리장성을 비롯해 서태후의 여름별장이었던 이화원 등 베이징은 역사적 도시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북서쪽 차오양구(朝阳区) 주센타오제다오(酒仙桥路4号) 다산쯔(大山子)에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중국 각지에서 하나 둘 씩 모여든 예술가들이 조성한 798 예술구가 있다.
798 예술구
굳이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파주의 헤이리 마을 정도가 되겠지만, 따져보면 근본은 아주 다르다. 헤이리 마을이 초기부터 계획적으로 건립된 곳이라면, 이곳 798 예술구는 원래 구(舊) 소련과 동독의 지원을 받아 건립된 군수공장이었다.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사회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은 대개 정부의 통제와 억압을 받기 마련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당시 예술가들은 도심 및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1995년 베이징 예술 중앙 학원이 저렴하고 작업이 충분한 공간을 찾던 중 지금은 없어진 706공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2001년 798 예술구의 첫 번째 외국인인 텍사스 출신의 로버트 버넬이 서점과 출판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에 직원으로 중국인이 들어오면서 예술가들에게 작업장을 제공하고 예술가들을 보호하며 예술구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빈약한 여건 속에서도 독일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건축물들과 하늘 높이 치솟은 굴뚝들은 언뜻 예술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 부조화 속에서도 현대적인 면을 보여준다. 동시에 외관 변형이 거의 없는 공장들은 예술가들의 독특한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갤러리들 또한 공장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공장이 내뿜는 특유의 차갑고 위압적인 분위기 아래 개성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예술적 공간이 차츰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는 발 빠르게 문화창의산업특구로 지정했고, 798 예술구는 중국의 이념을 탈피한 세계적인 예술지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 모택동의 구호가 적힌 갤러리 천정
798 예술구가 지금까지 성장하는 데는 2003년도의 베이징 비엔날레와 2004년도의 다산쯔 국제 아트 페스티발(Dashanzi International Art Festival)의 영향이 가장 컸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예술 작품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 후 교체되고 있지만, 거리나 건축물 전면에 있는 작품들은 당시에 설치된 것이 대부분이다.
798 예술구는 '커뮤니티 정신(Community Spirit)'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시를 원하는 예술가나 방문객들에게 따로 돈을 받지 않는다. 받는다 하더라도 아주 소액으로 운영된다. 예술구 유지를 위한 기초 비용은 소니나 도요타 등 각종 기업의 행사와 유명 브랜드의 런칭쇼, 패션쇼 등을 통한 수익금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상업화를 추구하는 현실에 따라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
물론 작품들이야 어디론가 옮겨지겠지만 황폐했던 이곳에서 지난 십여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명성이 어느 순간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각종 로비와 사회활동으로 이를 막으려 하고 있지만, 부동산 개발이 가져다줄 이익 앞에서 얼마나 잘 견뎌낼지는 의문이다.
798 예술구는 베이징 수도 공항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전이나 다시 공항으로 나올 때 방문하기 좋다. 다만 공항으로 가는 자투리 시간에 방문하는 것보다는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돌아보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이동할 때는 지하철 왕징역 1번 출구로 나와서 12번 버스를 타야 한다. 길이 낯설고 버스 정류장을 찾기 어렵다면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으니 지하철역에서 택시를 타는 것도 좋다.
왕징역은 우리 교민과 주재원 가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 술집 등이 많으며 주변에 여러 가지 관광 요소들이 많다. 798 예술구와 더불어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내서 돌아본다면 베이징의 색다른 일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5월 10일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