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듯 섬세한 자연 닮은 백자, 그 아름다움에 스며들다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4.05.02 08:00
글자크기

서울미술관 '백자예찬: 미술, 백자를 품다'展··· 8월31일까지

김환기  1956, 캔버스에 유채, 81x100cm, 개인소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김환기 1956, 캔버스에 유채, 81x100cm, 개인소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


"아무런 기교와 재조와 계획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스런 형태, 자연한 빛깔은 도공의 무심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 오직 자연에 맡겼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요." -김환기

달항아리를 좋아하고 즐겨 그려 '달항아리 작가'로 불리기도 한 한국근현대미술사의 거장 김환기 선생(1913~1974)은 백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덩그러니 놓인 항아리를 보면 어디 한 곳 기교를 부리거나 치장한 듯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갖가지 재료로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서양미술과는 사뭇 다른 동양미술, 특히 한국미술의 전형이 아닐까. 그 '자연스러움'의 미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미 한국의 근현대미술가들이 백자의 미학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시키고 현대화하기 위해 애썼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 백자의 숨결을 느껴보는 동시에 전통의 미학과 동시대의 미학이 우리 미술에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표현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의 '백자예찬: 미술, 백자를 품다' 전시다. 1930년대 이후 백자 미학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27명 작가의 회화, 설치, 도예 작품 등 모두 56점으로 구성했다.

전시는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백자, 스미다'를 제목으로 한 첫 번째 방에 들어서면 김환기의 '정원'이 먼저 관람객들을 맞는다. 화면에 둥실 떠 있는 둥근 항아리는 산과 구름, 하늘까지 품고는 방끗 웃는 것만 같다. 자연과 오롯이 한 쌍을 이루는 모습이랄까. 이 한 편의 동시 같은 정겨운 그림을 시작으로 미술관 옥상의 야외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던 백자의 귀한 면면을 만나게 된다.



단아하고 차분한 터치로 세밀한 정물화를 많이 남긴 도상봉 화백(1902~1977)은 자신의 호를 '도자기의 샘'이라는 뜻의 '도천'(陶泉)이라 지을 정도로 항아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의 그림 속, 국화나 라일락, 개나리 등을 꽂아 둔 항아리는 꾸밈없이 고요하고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정갈하다. 그 외에도 백자의 깊고 맑은 유백색의 색채, 도공들의 무작위적 작업 방식 등 백자의 미학을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한 박서보, 이동역, 정상화, 정창섭의 단색조 회화 작품도 볼 수 있다.

도상봉  1968,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개인소장.  1954, 캔버스에 유채, 72.5x90.5cm, 서울미술관 소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도상봉 1968,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개인소장. 1954, 캔버스에 유채, 72.5x90.5cm, 서울미술관 소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
손석   연도미상, 캔버스에 혼합재료, 150x150, 서울미술관 소장 /사진=이언주 기자손석 연도미상, 캔버스에 혼합재료, 150x150, 서울미술관 소장 /사진=이언주 기자
두 번째 섹션 '백자, 번지다'에서는 2000년 이후, 조선백자의 의미를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거나 그 의미를 확장하는 동시대 작품들로 구성했다. 백자 모티브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극사실적으로 재현한 고영훈, 백자의 고색찬연한 아름다움을 홀로그램을 이용한 신비로운 화면으로 표현한 손석, 달 항아리에 민족 통일과 인류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강익중, 3차원의 도자를 2차원으로 변주한 이승희, 백자의 전통을 짜장면 그릇을 통해 보여준 노세환, 빛을 담는 그릇으로서 도자를 해석한 정화진의 작품 등 독창적인 개성과 예술성을 반영한 작품을 보고 있자니 눈과 마음이 모두 즐겁다.

박부원  2008, 백자토, 유백유, 장작가마소성, 지름 55cm, 높이 55cm, 작가소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박부원 2008, 백자토, 유백유, 장작가마소성, 지름 55cm, 높이 55cm, 작가소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
마지막은 백자의 명맥을 이어가는 도예가들의 혼을 소개하는 '백자, 이어지다'로 꾸몄다. 현대도예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백자의 고아한 정취와 장인들의 예술혼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백자의 복원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한익환, 물레 성형의 원 형태를 파괴하는 파격의 미를 추구하는 김익영, 광주 왕실도자기 초대 명장인 박부원, 9대째 도자 가업을 이어온 무형문화재 사기장 1호 김정옥 등의 작품이 둘러앉았다. 관람하던 한 관객이 "거참 잘~ 생겼다"며 절로 나오는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미술관은 이 전시가 이어지는 오는 8월 31일까지 초청강연회, 음악회, 체험프로그램 등을 마련했다. 다음달 17일 오후 2시부터 90분간 김현숙 미술평론가가 '오마주 코리아, 오마주 백자 항아리'를 주제로 강연한다. 5월과 6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는 석파정 앞마당에서 야외콘서트가 열리며 도자체험교육프로그램 '감성 쑥쑥 흙놀이 교실'을 통해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관람요금은 성인 9000원, 학생 7000원, 어린이 5000원.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50% 할인한다. 문의 (02)395-0100.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석파정 앞마당(야외전시장)에서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병진 Pottery-love, 2013, 스틸, 자동차용 페인트, 130x130x132cm, 작가소장 /사진=이언주 기자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석파정 앞마당(야외전시장)에서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병진 Pottery-love, 2013, 스틸, 자동차용 페인트, 130x130x132cm, 작가소장 /사진=이언주 기자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