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뻐꾸기 시계' 팔던 시절 잊지말아야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4.04.1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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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홈쇼핑 20년만에 2500배 성장했지만…덜 성숙한 운영시스템, 잊을만하면 납품비리

[우리가 보는 세상]'뻐꾸기 시계' 팔던 시절 잊지말아야


1995년 8월 서울 목동 하이쇼핑(현 GS샵)의 스튜디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쇼핑호스트가 선보인 물건은 여러 가전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하나로 만능 리모컨'. 4만1600원짜리 리모컨을 3만5360원에 판다는 문구가 화면을 채웠다. 국내 첫 TV홈쇼핑 방송으로 기록된 이날 주문량은 10개가 채 안됐다. 그나마 이 중 절반은 숨죽이고 화면을 지켜보던 직원들이 호기심에서 산 것이다.

같은 시기 HSTV(현 CJ오쇼핑)의 뻐꾸기시계 판매방송도 비슷했다. 7만8000원짜리 이 시계는 방송시간에 총 7개가 팔렸는데 이 중 4개는 직원들이 주문했다고. 이때만해도 홈쇼핑에 주목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아니다. 거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게다.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만져보고 사는 것이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홈쇼핑은 그저 낯선 유통망이었다.



제조업체들도 홈쇼핑의 위력을 반신반의했다. 납품을 주저하는 바람에 홈쇼핑 회사들이 제품을 공급할 업체를 찾아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하지만 1년만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만능녹즙기' 등 히트상품이 쏟아진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역시 홈쇼핑 업체들에겐 기회로 작용했다. 판로를 잃은 기업들이 홈쇼핑으로 몰렸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싸고 편리한 쇼핑채널"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홈쇼핑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유통망으로 성장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간한 '2014 유통산업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TV홈쇼핑 시장 규모는 8조7800억원이다. 이는 1995년 TV홈쇼핑 출범 첫해 매출(34억원)의 2500배를 웃도는 것이다. GS와 CJ 뿐이었던 홈쇼핑 사업자는 현대, 롯데, NS, 홈앤쇼핑 등이 가세하며 총 6개로 늘었다. 업계는 현재 국내 TV홈쇼핑 이용자는 1500만∼16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9% 늘어난 9조5300억원이 될 전망이다.



홈쇼핑 시장은 성장했지만 운영 시스템이나 회사의 도덕적 책임감은 아직 본궤도 오르지 않은걸까. 잊을만하면 홈쇼핑 비리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끈다. 실제 6개 홈쇼핑 업체 중 5곳이 최근 3년간 납품 비리 문제로 검찰에 적발됐다. 특히 롯데홈쇼핑은 최고경영자(CEO)까지 연루돼 롯데그룹 전체 이미지가 타격을 입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비리 온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업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 유통단계를 줄여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중소기업에 판로를 지원하자는 취지로 홈쇼핑 사업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휴롬 원액기', '락앤락 밀폐용기', '한경희 스팀청소기' 등 이름없던 중소기업 아이디어 상품을 글로벌 히트 상품으로 만든 업적까지 깎아먹어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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