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로 노래배워 줄리아드 간 프리마돈나, 낮은 무대로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4.04.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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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프라노 이지연 "저를 찾는 곳 어디든 가서 노래 할래요"

지난해 네덜란드의 9살 어린소녀 아미라 빌리하겐(Amira Willighagen)은 '홀란드 갓 탤런트'(Holland's Got Talent)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푸치니 오페라 '자니스키키'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불러 심사위원은 물론 방청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청아한 신동의 목소리는 유투브를 타고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소녀에게는 노래 선생이 따로 없었고, 그저 유투브에서 혼자 음악을 찾아 듣고 따라 부르며 연습했다는 것이다.

소프라노 이지연씨를 만나 그의 인생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9살의 그 소녀가 떠올랐다. 만약 그가 어린 시절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더라면 이런 모습으로 먼저 대중과 만나지 않았을까.



소프라노 이지연은 낮은 곳에서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길 바란다. "내 몸이 악기잖아요. 건강만 하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저의 노래로 희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이동훈 기자소프라노 이지연은 낮은 곳에서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길 바란다. "내 몸이 악기잖아요. 건강만 하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저의 노래로 희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이동훈 기자


"대학에 갈 때까지 단 한 번도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이탈리아의 소프라노 레나타 태발디의 노래 테이프가 제 스승이었죠. 오로지 테이프를 열심히 들으면서 모방을 하려고 했던 게 전부였어요."

레나타 태발디의 우아하고 고상하면서도 따뜻한 소리가 좋았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리아칼라스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듯 강렬한 매력이 그를 일깨웠고, 몽세라 카바예의 고음 테크닉에 반해 그때부터 다양한 소리를 내기 위해 훈련했다. 이 세계적인 소프라노 세 명을 롤 모델로 둔 덕분에 소프라노 이지연의 레퍼토리는 더 풍성해졌다.



타고난 재능은 누구도 막지 못하는 걸까. 정말 독학이 가능했는지 물었다. "레슨 받으려면 그게 다 돈이잖아요. 어릴 때 아버지가 가야금을 사주셔서 음악을 알게 됐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음악공부를 할 형편이 아니었죠.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체능, 특히 음악을 전공했다면 으레 부잣집에 태어나 우아하게 공부했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간혹 순탄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포기 하지 않고 정상에 선 이들을 만날 때면 그 연주가 더 뭉클하고 감동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이지연씨의 울림도 그렇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거푸 놀랐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대신했고 수차례 이사를 다니는가 하면 음악 연습실에서 청소와 심부름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레슨 한 번 받지 않고 독학으로 줄리아드음대 대학원에 진학한 사연이나 미국에서 '최고의 프리마돈나'라는 극찬을 받은 성악가라는 평은 이미 잘 알려졌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라며 회상했지만 낯빛엔 그늘 한 점 없어 어려움 모르고 살아온 소녀의 티가 묻어났다. 세월이 그만큼 흘러서일까, 혹은 음악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만 것일까. 연신 방글방글 웃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는 "고달팠던 옛날 얘기 너무 많이 쓰지는 말아주세요, 그래도 노래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데요"라고 말한다.

그 행복한 소리를 이제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특히 화려하고 큰 무대가 아닌, 낮은 곳에서 대중과 가까이 마주하며 음악이 주는 기쁨을 공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공간은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인근에 위치한 '푸른역사아카데미(푸른아카)'다. 푸른아카는 '제도 밖에서 역사의 미래를 찾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역사서를 펴내고 있는 '도서출판 푸른역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의 쟁론이 벌어지는 곳, 인문학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기위해 소통이 이루어지는 작지만 특별한 공간이다.

서른 평 남짓한 이 곳에선 올해 들어 신학, 고전, 어학 강좌에 이어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음악회가 열린다. 지난달 14일 바리톤 송현상씨의 독창회가 처음 열렸다. 그는 '고향, 그리움'을 주제로 선곡한 우리 가곡을 불렀고 노래 중간마다 구수한 입담으로 빼곡히 들어찬 관객들과 가깝게 호흡했다. 그 감동의 바통을 이지연 소프라노가 받기로 했다. 25일 오후 7시30분에 열리는 '소프라노 이지연의 콘서트'다.

그가 직접 선곡한 가곡, 오페라 아리아 등 12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님은 먼 곳에','봄날은 간다', '한계령', '칠갑산' 등 평소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듣기 힘든 대중가요까지 만날 수 있다.

"워낙 유명하고 좋은 곡이죠. 많은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이미자씨 노래가 왜 그렇게 서글프고 싫었는지, 그런데 지금은 좋아해요. 우리 노래를 더 많이 불러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대중가요와 우리 가곡을 많이 알리다 보면 나중엔 서양의 클래식음악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을 테죠."

예전에는 무대 환경이나 조건을 깐깐하게 따지고 예민하게 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든 상황이 된다면 달려가 노래할 마음뿐이다. "저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신 곳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가서 소통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활동해서 한국 분들과 자주 뵙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라도 알아가고 싶어요. 저는 노래하고 박수 받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최고의 소프라노"라며 극찬한 이지연의 목소리를 바로 눈앞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서로의 숨소리마저 공유하는 특별한 공간에서의 울림과 떨림, 우리에게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까.

프로그램을 기획한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전국 지방 곳곳에서 푸른아카와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특히 음악의 힘을 전하며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이지연의 콘서트'에 참여를 원한다면 푸른역사아카데미 온라인카페 정기강좌 게시판(http://cafe.daum.net/purunacademy)이나 전화(070-7539-4822)로 신청할 수 있다. 입장료는 2만원이며 계좌입금 또는 현장에서 카드나 현금으로 결제하면 된다.

25년간 출판인의 길을 걸어온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왼쪽)는 "이지연 선생의 노래는 몇몇 사람만 듣기에 정말 아깝다는 생각에 이번 콘서트를 마련하게 됐다"며 "음악의 힘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25년간 출판인의 길을 걸어온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왼쪽)는 "이지연 선생의 노래는 몇몇 사람만 듣기에 정말 아깝다는 생각에 이번 콘서트를 마련하게 됐다"며 "음악의 힘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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