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녹턴 5번, '잿빛 아름다움'

딱TV 김민영 한국무역협회 전문위원 2014.03.29 08:54
글자크기

[딱TV]쇼팽 : 녹턴 5번 (Nocturne in F# major Op.15-2)

편집자주 김민영의 '딱클래식' - 피아노 치는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 한국무역협회 전문위원 김민영이 딱 찍어 초대하는 클래식 음악

가슴 앓던 첫 사랑…'콘스탄체'

쇼팽이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기 전 1830년 10월 11일 바르샤바에서 가진 고별 연주회에서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1번 E-minor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Eb-major,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Bb-minor,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A-minor Op.16과 더불어 오늘날 4대 피아노 협주곡의 하나로 손꼽힌다.

피아노 협주곡 1번에는 쇼팽 특유의 우울하고 애수에 젖은 정서보다는 정열과 격정이 담겨있다. 그 배경을 녹턴 5번과 연계해 이야기하고 싶어 본론에 앞서 이 곡에 관한 이야기를 서두에 꺼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에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이유는 한 여인을 사모하는 스무 살 청년 쇼팽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쇼팽의 첫 사랑, 그 여인의 이름은 콘스탄체 글라드코브스카(Konstanze Gladkowska). 쇼팽의 동창이자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쇼팽의 고별 연주회가 끝나고 보름 후 10월 25일에 쇼팽의 앨범에 다음과 같은 시 두 편을 아로새겼다.

거부할 수 없는 그대의 운명을 맞으세요.
그 무엇보다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기억하세요. 잊을 수 없는 이 한 가지.
여기 폴란드에서 그대는 진정 사랑받았음을.



명성의 월계관은 절대 시들지 않으리.
절친한 친구들과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네.
낯선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그대를 존경하고 칼자루가 닳도록 대우할는지 모르나.
그들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보다 결코 더 강할 수는 없다네.


고별 연주회 한 해 전인 1829년 10월 3일에 쇼팽은 그의 절친한 친구 티투스(Tytus Woyciechowski)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이상형에 맞는 여인이 있다고 털어놓으며 이렇게 고백했다. “나에게는 이미 이상형이 있어, 어쩌면 불행하게도 말이야. 벌써 반년 동안이나 그녀에게 말 한번 건네보지 못한 채, 그녀를 충실히 사모해 왔어. 내 협주곡의 아다지오가 되어준 그녀를 기억하며 매일 꿈을 꾸네."

내성적인 쇼팽은 변변한 사랑 고백도 못한 채 바르샤바를 떠나기 전날 콘스탄체에게 반지를 건네주었고 콘스탄체는 쇼팽에게 리본을 주었다. 둘은 그렇게 눈빛으로 만났고 또 헤어졌다.


이별 후에도 쇼팽은 콘스탄체에게 흔한 연애편지 한 장 쓰지 못하면서 티투스에게 쓴 편지에서는 콘스탄체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파리로 가야 할까,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삶이나 죽음이나 내겐 다 매한가지네. 만일 콘스탄체가 친절하게도 내 안부를 묻거든 염려할 것 없다고 해줘. 내가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외로워하고 불행해 한다고 전해줘.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유골은 그녀의 발아래에 뿌려져야 한다고 말해줘." 어리석기 그지없는 이 천재 피아노 시인의 연정(戀情)에 가슴 답답해하는 사람은 필자만이 아니리라.

출국 직후에 터진 1830~1831년 폴란드 독립투쟁

한편, 쇼팽이 고별 연주회를 마치고 빈으로 떠나자 곧이어 바르샤바에서는 독립투쟁이 벌어졌다. 이듬해 1831년 2월 25일 바르샤바의 동쪽에서는 폴란드와 러시아 간의 오르신카 그로호프스카 전투(Battle of Olszynka Grochowska)가 벌어졌다. 이틀간의 격전 끝에 폴란드는 7천 명이 전사하는 희생을 치르며 바르샤바를 지켜냈다.

그러나 러시아에 호의적이었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랑스 혁명 정신이 부활할 것을 두려워한 영국, 또 정통성을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프랑스의 왕 루이 필리페(Louis Philippe) 등 주변국은 폴란드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더구나 프랑스는 1830년 7월 혁명으로 보수 체제가 붕괴하면서 불안한 형편에 있었다.

결국 이어진 오스트로벤카 전투에서는 폴란드군 8000명이 전사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유럽에 사회혁명으로 미칠 것을 우려한 주변국 때문에 폴란드 정부는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폴란드는 1918년 독립하기까지 오래고 끈질긴 독립운동에도 외세에 의해 분할과 소멸을 거듭하게 되었다.

콘스탄체의 결혼

쇼팽은 1831년 가을, 드디어 빈을 떠나 파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얼마 후 콘스탄체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해 성탄절 경에 쇼팽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재회하게 될 것인가? 어쩌면 재회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내 건강이 이렇게도 나빠져 있으니…. 종종 내 정신이 아득해지며 천국 같은 평정을 느끼기도 한다. 떠나지 않는 그림자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것이 한없이 나를 괴롭힌다.”

쇼팽이 언급한 “떠나지 않는 그림자”는 조국 폴란드의 참상 때문에 예견되는 그의 첫사랑 콘스탄체와의 영원한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리라.

쇼팽의 매력에 반하는 파리

해를 넘겨 쇼팽이 만 22세를 나흘 앞두었던 1832년 2월 26일 (쇼팽의 생일이 쇼팽 가에서는 3월 1일이라고 하지만 그의 세례 기록에 따르면 2월 22일이다.), 피아노의 왕이라고 불리던 칼크브레너(Friedrich Kalkbrenner)의 주선으로 플레엘(Salle Pleyel)에서 콘서트를 가진 후에 쇼팽의 명성은 파리 전역에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1832년 여름 무렵에는 당시 파리 최고의 출판사였던 슐레신저(Schlesinger)사와 계약을 하기에 이르고, 동시에 쇼팽의 작품들은 라이프치히, 런던 등에서도 출판되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로서 또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리 몽쏘 공원(Parc Monceau)의 조각상 "Chopin On The Piano And His Muse (피아노 치는 쇼팽과 그의 뮤즈)"↑파리 몽쏘 공원(Parc Monceau)의 조각상 "Chopin On The Piano And His Muse (피아노 치는 쇼팽과 그의 뮤즈)"


동시에 쇼팽은 리스트, 멘델스존, 힐러, 베를리오즈, 프랑숌 등 당대의 음악가들, 그리고 칼크브레너(Kalkbrenner), 리스트(Liszt), 탈베르그(Thalberg), 헤르츠(Herz)와 같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음악가이자 최고의 피아노 레슨 선생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편 쇼팽은 파리의 폴란드 망명자들과 함께 폴란드 문학 소사이어티(The Polish Literary Society)의 회원으로 가입하며 이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섰다.

파리에서 쇼팽은 공개적인 콘서트보다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살롱에서 주로 연주를 했는데, 그의 수줍은 듯 하얗고 창백한 얼굴, 높은 코, 가늘고 긴 손가락, 소곤대듯 하는 말투, 그리고 눈부신 피아노 연주에 뭇 여성들이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았던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숨 막히는 이별의 아픔 그리고 잿빛 아름다움

독특하고도 놀랍도록 아름다운 곡, 녹턴 4번 Op.15 no.2는 바로 이 시기(1831~1832)에 쓰인 곡이다. 첫사랑 콘스탄체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의 참상으로 인한 절망, 그리고 외지에서의 외로움. 내성적인 스물두 살 청년 음악가가 쓴 이 곡은 당연히 우울함만으로 가득해야만 할 것 같지만, 오히려 우아하기 짝이 없고 영롱한 빛과 같은 찬란함이 가득하다. 콘스탄체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사모의 마음일까?

이 곡은 C장조에서 아주 먼 F# 장조를 선택함으로써 감정의 복합성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자아낸다. 그에 더하여 쇼팽은 곡의 시작에 ‘dolssimo’라고 노트까지 달아 달콤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주제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멜로디와 리듬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킬 만큼 독창적이고 창의적이어서 아무리 무덤덤한 사람일지라도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지경이다.

그뿐인가, 중간에 삽입된 멜로디는 쇼팽이 ‘doppio movimento’ 라고 노트하였듯이 이전보다 두 배나 빠르게 진행되면서도 부드러워서 마치 아담한 크기의 파도가 격렬하게 그리고 한편으로는 소곤대며 출렁이는 듯하다. 이렇게 소심하면서도 격정적인 드라마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졸이며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꼭 움켜잡게 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 처음 시작되었던 주제가 반복된다. 파도는 더욱 잔잔해지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고요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작가이자 피아니스트 겸 음악 비평가인 제임스 휴네커(James Gibbons Huneker, 1860~1921)가 이 곡을 감정의 분출 (the emanation of feelings)이라고 찬양했을 정도로 이 곡은 쇼팽의 녹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평가받는다.

↑쇼팽의 왼손 캐스트. 폴란드 박물관 소장.↑쇼팽의 왼손 캐스트. 폴란드 박물관 소장.
그러나 이 곡의 내면에는 감히 위로의 말 한마디도 쉽게 건네기 어려운 농도 짙은 쓸쓸함과 외로움이 묻어 있다. 조국의 독립 투쟁에 동포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외국에 나와 음악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한 천재 음악가의 고통스러운 신음과 첫사랑에 대한 비련이 진하게 베여 있다.

그러한 순수함이 이 곡을 진정 아름답게 하는 것 아닐까? 이 곡에는 껍질을 깨고 새어 나오는 듯한 잿빛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잿빛을 삼키는 듯, 우아하지만 슬픈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Zimerman의 연주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3월 29일 실린 기사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