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의 유럽여행기]자유로운 사고가 예술적 감흥으로

머니투데이 김홍선 2014.03.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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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하늘이 보이는 낭만의 도시, 파리를가다

편집자주 필자는 23년간 IT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벤처 기업가로, 전문경영인으로서 종사한 IT 전문가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그는 최근 7년간 몸 담았던 안랩의 CEO를 그만 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면서 그는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이야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고, 또 전문가들의 여행기도 많다. IT 경영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의 단상은 어떨까. 바쁜 일상으로 출장 외에 여유있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CEO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쯤으로 시리즈를 연재한다. 여행경로는 로마에서 시작해 나폴리-피렌체-베니스-밀라노-파리까지. 20일간의 여정이다.

파리를 가면 두 곳을 꼭 가보라고 지인으로부터 충고를 받았다. 하나는 개선문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파리 시내를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느 강변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이다.

어느 도시이든 상징이 되는 높은 타워나 빌딩이 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 빌딩, 시카고의 시어즈(Sears) 타워, 도쿄의 스카이트리 등. 그런 맥락이라면 파리의 상징이고 가장 높은 에펠탑에 올라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분은 유독 이 두 장소를 권한다.



베테랑 의식 /사진=김홍선베테랑 의식 /사진=김홍선


콩코르드 광장에서 샹들리제 거리를 거쳐서 개선문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마침 전쟁 중에 희생한 장병을 위한 세리머니(ceremony)를 하고 있었다. 연세 지긋한 노병들이 옛 군복을 입고 식을 진행하는 모습이 아주 경건하다. 이 행사를 매일 한다고 하니,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억하는 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 입구에는 개선문에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훗날 대통령이 된 드골 장군이 이곳에서 환호하는 군중과 함께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잔혹했던 2차 세계 대전, 그 전쟁의 압박과 공포에서 벗어나 승리와 해방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마치 나도 그 기쁨의 현장에 같이 있는 것 같다. 비록 개선문을 계획한 나폴레옹은 살아서 이 개선문을 지나가지 못했지만, 후손들에게는 환희의 광장이 되었다.



프라읏 파리 방사형 도시 모습 /사진=김홍선프라읏 파리 방사형 도시 모습 /사진=김홍선
개선문은 272개의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하루 종일 돌아 다니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갔다. 드디어 개선문 위에서 바라본 파리의 모습.

“아, 이래서 보라는 거구나!”

소위 방사형 거리! 모두 12개의 도로가 개선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파리의 다양한 모습이 동서남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고층 빌딩이 없어서 그다지 높지 않은 개선문 위에서도 한 눈에 보인다. 평평한 파리의 시가지가 하늘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원스럽게 탁 트였다. 타워에서 보는 것과는 색다른 느낌이다.


이어서 세느 강변의 유람선 ‘바토무슈’를 타러 갔다. 개선문 위에서 바라본 것이 파리의 스케일과 폭을 느끼게 하는 수직적 광경이라면, 세느 강을 따라 파리를 관통하면서 본 것은 파리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수평적 다채로움이다. 마침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이었다. 이날의 파리의 야경은 유럽 여행의 피날레로서 마음 속에 강력하게 각인되었다.

하늘이 보이는 도시, 파리. 흔히 파리는 하늘을 볼 수 있는 도시라고 한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서울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서울 시내에서 하늘을 얼마나 보면서 살고 있는가?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구성된 서울에서 하늘은 저절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봐야 한다. 그것도 빌딩 숲 속에 서 있으면 일부분만 볼 수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도시의 모습보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더 접하게 된다. 그래서, 교외로 나가서 휴게소에만 들러도 드높은 하늘이 반갑다.

반면 파리는 어느 곳에서도 하늘이 보인다. 일단 시 전체가 평평하고, 건물이 낮기 때문이다. 마치 하늘이 도시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몽마르뜨 언덕에서도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건물들과 어우러진 멋진 파리의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언덕 위 /사진=김홍선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언덕 위 /사진=김홍선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오다 보니, 한 여인의 동상이 있다. 안내자가 “이 노래 아세요?’라며 음악을 들려준다. “Paroles(빠로레), Paroles”다. 남자 가수가 누구냐고 묻길래 ‘알랭 들롱’이라고 즉각 답했다. 그런데, 의외로 호응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투어 그룹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우리 시대에 ‘알랭 들롱’은 미남의 대명사였는데..

이 동상의 주인공은 이 노래를 같이 부른 여가수 ‘달리다(Dalida)’다. 이집트에서 건너온 매력적인, 그러나 순탄치 않았던 운명의 샹송 가수다. 이와 같이 몽마르뜨 언덕은 피카소와 같은 유명인은 물론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다양하다.

나는 시원스런 한강, 산(山), 그리고 현대적 건물이 어우러진 서울도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풍적인 건물과 멋스러움이 하늘과 조화를 이룬 파리의 모습은 다른 관점에서 매력적이다. 차를 타기 보다는 한가롭게 걸어 다니고 싶은 도시다. 한강을 걸어서 건넌 적은 없지만, 세느강은 걸어 다니는 게 더 운치가 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사진=김홍선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사진=김홍선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이 개조했다는 파리. 개성과 낭만이 넘치는 도시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파리라고 해서 왜 문제가 없겠는가? 대도시는 으레 밝음과 어둠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도시만의 색깔은 오래 남는다. 며칠 간의 여행으로 개인적으로 느낀 파리의 차이점 하나를 들자면, 그것은 ‘자유로움’이다. 자유로운 사고가 예술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도시 환경과 어우러진 것, 이것이 파리의 문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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