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간통, 그 관념과 실제 사이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 2014.03.17 06:01
글자크기
법과시장, 조혜정변호사 프로필 사진법과시장, 조혜정변호사 프로필 사진


일을 하다보면 가끔씩 ‘아직도 간통이 형사처벌 대상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지난 20여년간 여러차례 폐지논란이 있었던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폐지된 걸로 오해하는 것이다.

1990년부터 2008년까지 헌법재판소가 4차례나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려준 덕분에 현재까지도 간통죄는 엄연히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로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간통고소 및 관련있는 이혼사건을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필자는 간통을 형사범죄로 계속 남겨두는 게 맞는지 참 의문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0여년간의 변호사 생활에서 목격한 바에 의하면 간통죄는 회복불가능한 뇌사상태에서 생명유지장치로 연명하고 있는 환자다.

일단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달리 간통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은 자신이 잘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간녀와 살기 위해서 집을 나간 남편이 ‘행복추구’를 위해서 이혼해달라면서 먼저 이혼소장을 보내는 경우를 봤다. 남편과의 외도를 따지러 찾아간 아내에게 상간녀가 도리어 ‘당신 남편은 나를 사랑하니까 이혼해라’고 호통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들이 가끔씩만 발생한다면 그 사람들을 파렴치한으로 치부하고 말겠지만, 거의 모든 간통사건에서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이건 얘기가 다르다.

이제 우리 사회의 상당수 구성원이 개인의 애정이나 행복추구가 가정공동체 유지만큼(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징후이다. 사회의 성도덕이 그만큼 변한 것이다.


물론 간통죄가 형사범죄로 남아있는 것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바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전업주부들에게 이혼 후 생활의 토대가 될 재산을 확보해주는 기능이다.

현재 간통고소는 대부분 재산없는 전업주부들이 남편 명의 재산을 받기 위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통고소를 하는 과정은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요즘에는 간통사실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기소가 된다.

사람을 동원해서 뒤를 쫓고 경찰을 불러 불륜현장을 덮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 과정은 상당한 돈과 시간, 수고가 따르는 험한 과정이고 성공률도 높지 않다.

막연히 바람 피운 배우자를 응징하겠다는 정도의 감정적인 이유만으로는 이 과정을 감내하기 어렵다. 복수를 위해 간통고소를 하겠다던 사람들은 구체적인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 포기한다.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부부의 재산이 남편 단독 명의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하게 되는 경우 부인은 재산을 받아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하고 재혼하려는 남편들은 이혼시 재산분할에서 더 치열하게 다투고 더 인색하게 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기 잘못으로 이혼하게 되는 주제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새로운 상대와의 재혼을 예정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재혼생활에 필요한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든다.

외도 사실을 들킨 초기에는 외도를 무마하기 위해 재산을 전부 준다고 한 남편들도 곧 생각이 변한다. 그러니 간통고소를 실제로 하게 되는 것은 상당한 재산이 걸려있는 경우로 좁혀지게 되는 것이다.

경험에 의하면 간통고소를 하게 되면 대체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재산분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의 형벌권이 이혼시 재산확보의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간통고소 없이도 배우자가 재산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외도가 이혼의 원인이 되는 경우 부부의 전 재산을 아이들을 맡게 되는 쪽에서 가져가는 것으로 바꾼다면 굳이 간통죄를 존치시켜둘 이유는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20여년이 넘은 간통죄 폐지논란에 결론을 내릴 때가 된 것 같다. 뇌사상태의 간통죄에서 생명유지장치를 그만 제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