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의 역설' 빚 갚는 기업 봇물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4.03.17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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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에 자금을 수혈해주는 돈줄이 조여들면서다. 웅진 STX 동양 등 빚을 갚지 못해 쓰러진 기업들이 빚은 부도 사태의 역설이다.

16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웅진씽크빅 (2,130원 0.00%)은 다음달 8일 만기를 맞는 회사채 300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상환하기로 했다. 당초 같은 규모의 사모사채 차환 발행을 추진했지만 회사 측이 원하는 금리 수준에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 계획을 접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웅진씽크빅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97억원이다. 다음달 만기 회사채를 갚고나면 현금 잔고가 빠듯하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겠다는 판단이다.

두산건설 (1,240원 0.0%)(신용등급 BBB+)도 오는 21일 만기를 맞는 55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현금으로 갚기로 했다. 자금시장에서 꺼리는 건설업종인데다 신용등급도 낮아 차환 발행은 엄두도 못 냈다. 건설 해운 철강 등 이른바 취약업종 기업들은 업계 1, 2위권의 AA급 이상 우량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올해 만기 회사채를 현금 상환하는 방향으로 가닥 잡았다.



앞서 STX조선해양 (0원 %)(BBB+) CJ건설(BBB+)도 각각 1800억원과 200억원의 만기 회사채를 차환하지 못하고 현금으로 상환했다. 지난달 3000억원의 회사채 만기를 맞은 동국제강(A0)과 20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 두산중공업(A+) 역시 뾰족한 대안이 없어 현금 상환의 길을 걸었다.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부 우량기업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빚 줄이기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최고 신용등급의 KT (35,800원 ▲150 +0.42%)(AAA)는 고객정보 유출 사태와 감독당국의 영업정지 처분으로 회사채 발행이 무산되면서 오는 30일 만기 회사채 1700억원을 현금으로 갚게 됐다. GS칼텍스(AA+) 역시 지난 1, 2월 잇따라 터진 여수 기름유출 사고와 국제신용등급 강등 충격에 회사채 1000억원과 김치본드 1억달러를 현금으로 상환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만기 회사채 상환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데다 은행이나 보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투자심리도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최근에는 KT ENS의 흑자 부도 논란으로 KT를 포함한 KT 계열사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자금줄은 더 묶이는 분위기다.


문제는 자금시장 경색이 길어지면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되면서 전반적인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자금시장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제계에서는 이미 이런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매출 상위 600대 기업의 올해 투자 규모는 133조원로 지난해보다 6.1% 늘어난 데 그쳤다. 2004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의 평균 투자 증가율(9.9%)과 차이가 크다.

이혁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부진한 기업 실적과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을 감안할 때 회사채 시장의 수급이 조기에 개선되기는 어렵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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