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판테온 /사진=김홍선
“로마에 있는 판테온(Pantheon) 천장에는 원형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만일 비가 온다면, 건물 안으로 비가 들어갈까요? 만일 들어간다면 빗물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판테온은 ‘모든 신에게 바치는 신전’이라는 의미로서, 다신교 국가다운 개념의 건축물이다.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연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인 아그리파가 집정관일 때 지은 후, 화재로 무너진 것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건했다. 무엇보다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로마 시대 건축물로서 유명하다.
판테온 천장 /사진=김홍선
빗물이 흘러 내려가도록 설계된 판테온 바닥 /사진=김홍선
과학적 분석의 산물, 로마 수도교
한편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시리즈 중의 한 권을 로마의 인프라에 대해서만 할애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는 가도, 다리, 수도, 의료, 교육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접목해서 시스템화하는 로마 문명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도로 인프라 덕택에 이동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과거에 영동고속도로는 대관령의 꾸불꾸불한 길을 통과해야 하므로, 직선거리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터널 몇 개만 지나면 바로 강릉이 나온다. 산을 끼고 도는 게 아니라, 아예 높은 곳에서 터널을 뚫어 버린 것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여건상 이러한 방식은 아주 효과적이다. 그 밑에서 고속 도로를 올려다보면 기술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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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수도교 /사진=김홍선
로마 수도교는 이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차질없이 물이 공급되도록 했다. 정밀한 과학적 분석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도교를 통해 공공장소, 목욕탕, 시민의 생활 현장에 깨끗한 물이 배분되었다. 현재는 수도교가 끊어져서 갱도의 단면도 뚜렷하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수도교 유적지 현장에서 여러 수도교가 로마로 향하고 있었을 장관을 상상만 해도, 로마 문명의 힘과 활기가 느껴진다.
로마 시민에게 안녕과 편리를 가져다준 수도교는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용도폐기 되어갔다. 전쟁 중에 파괴되기도 했지만, 체계적인 유지 보수도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또 다른 일화로서, 야만족이 수도의 갱도를 통해 침입하는 것을 걱정했다고 적고 있다.
수도교 갱도 단면 /사진=김홍선↑
IT 인프라에서도 그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검색 서비스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찾기 위한 도구다. 그런데 바로 그 편리함은 해커도 잘 알고 적극 활용한다. 이를테면 대상으로 하는 내부 임직원의 인적 사항이 필요하면, 단순 검색을 통해서도 인터넷과 SNS에 나타난 신상, 가족, 및 각종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 공격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구글(Google)’이라는 IT 보안 전문가 게리 맥그러(Gary McGraw)의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로마의 대표적 건축물인 판테온, 그리고 대표적 인프라인 수도교. 모두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목적은 공공의 안녕과 평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체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의 우수성이 밑바탕이 되어야 했다. 백성을 긍휼하게 여긴 세종대왕의 치세 기간은 과학이 융성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삶의 질은 과학 기술의 역량에 달려있다. 로마에서 그런 평범한 역사적 사실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