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의 유럽여행기]화산이 파괴, 화산재가 지킨 로마문명

머니투데이 김홍선 2014.03.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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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이 멈춘 이탈리아 남부 고대도시 '폼페이'를 가다

편집자주 필자는 23년간 IT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벤처 기업가로, 전문경영인으로서 종사한 IT 전문가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그는 최근 7년간 몸 담았던 안랩의 CEO를 그만 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면서 그는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이야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고, 또 전문가들의 여행기도 많다. IT 경영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의 단상은 어떨까. 바쁜 일상으로 출장 외에 여유있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CEO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쯤으로 시리즈를 연재한다. 여행경로는 로마에서 시작해 나폴리-피렌체-베니스-밀라노-파리까지. 20일간의 여정이다.

로마에서 아침 일찍 단체 투어를 위한 버스를 탔다. 비가 많이 오고 있지만, 폼페이를 가야 하는 일정이다. 안내하는 분이 지루하지 않도록 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여러분은 일과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과 식사를 하고, 일하러 가고, 일과 후에는 친구 만나고,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하고 등등. 우리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왜 당연한 얘기를 저다지도 장황하게 설명하는가 의아했다. 그런데 곧이어 반전의 메시지가 있었다.

"갑자기 모든 활동이 정지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순식간에. 앞서 말한 모든 장면이 멈춰 섰습니다. 그러다가 몇백 년 후 자손들이 그것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요? 옛 조상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보지 않겠습니까?”



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도로 /사진=김홍선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도로 /사진=김홍선


그 이야기에는 폼페이 유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순식간에 폼페이는 폐허가 되었다. 전혀 예측도 못 했기에 미처 피할 수도 없었고, 대비할 수도 없었다. 그냥 평상시처럼 삶을 영위하다가 갑자기 당한 것이다. 그 후 화산재 속에서 몇 천 년을 묻혀 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발견되었고, 지속적인 발굴로 실체가 하나씩 드러났다. 천재지변으로 땅 밑에 묻혀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했기에 그 형태를 보존할 수 있었다.

비록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시일이 가면서 훼손되었지만, 그 당시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되었다. 폼페이가 인류 역사상 귀한 유적이 된 배경이다.

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건널목 /사진=김홍선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건널목 /사진=김홍선
우리는 그림이나 고서(古書)의 기록, 때로는 돌 위에 쓰인 메모를 통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추측한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과학적 분석과 고증을 바탕으로 짜 맞추어 본다. 세월이 지나면서 생활 방식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당시 문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테면 현시대에는 고층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지만, 수천 년 지나서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아예 모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후손들은 연구와 상상력을 동원해서 선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만일 과거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당시의 생활상 자체를 입증하기 때문이다.


로마 문명과 생활 시스템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로서 각종 무역이 발달했다. 본래 이탈리아 남부는 해상 무역에 밝은 그리스 출신이 주도했고, 폼페이도 각지에서 들락날락하는 수많은 뱃사람과 외지인들로 붐볐다고 한다. 당연히 상업이나 문화 활동이 성행했을 것이다.

일단 도시 안으로 들어서면, 로마가 자랑하는 도로의 실체를 볼 수 있다. 마차가 자유롭게 다니면서도 사람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건널목, 말을 묶어둘 수 있는 도로변 장치, 그리고 항상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공동 수도 등. 복잡하고 번화한 도시에서 많은 시민이 같이 살 수 있게 한 시스템이 인상적이다. 이 도로를 따라 짐을 실어 나르고, 사람들이 어울려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과거와의 만남이 절로 이루어진다.

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공동수도 /사진=김홍선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공동수도 /사진=김홍선
로마 대중이 즐겼다는 목욕탕은 지금의 목욕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장을 통해 자연 채광이 되도록 하고, 뜨거운 물방울이 옆으로 빠지게 하고, 시원한 물이 나오는 분수대가 옆에 놓여 있다. 탈의실과 보관소도 갖추고 있다. 공중목욕탕은 일반 시민의 휴식 터였다고 한다.

맷돌과 빵 굽는 곳이 있는 것을 보니 빵집인 것 같고, 아담한 고급 주택의 내부는 우아하다. 환전상까지 갖춘 장터와 시민이 모여들던 광장은 널찍하다. 원형극장 안에서는 먼 자리에서도 또렷하게 소리가 들린다. 2,000년 전 주거의 형태, 거리 모습, 활기찬 문화를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다. 폼페이 유적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시 생활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로 로마 문명의 우수성과 시스템에 감탄하게 된다. 지금의 교통 시스템도 로마의 도로 구성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가? 목욕 문화의 프로그램은 이미 로마 시대에 형성된 것인가?

“로마 문명 이후 우리가 새로 발명한 것은 별로 없다”라고 누가 말했다고 하는데,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궁극적으로 국가가 얼마나 배려하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보통 사람들의 삶이 영향을 덜 받으려면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도로나 공중목욕탕, 사회 인프라에서 그런 로마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 폼페이

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노천강당 /사진=김홍선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노천강당 /사진=김홍선
화산 폭발이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우리는 폼페이의 생활상을 목격하게 됐다. 기록 수단이 많지 않고, 기록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시대, 천재지변이 뜻밖에 과거의 삶을 예측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아마도 미래에는 이러한 비극이 없더라도,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 같다. 새로운 기술 덕택이다.

디지털 문명은 ‘망각이 사라지는 시대’를 만들었다. 문자, 음성,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의 형태로 보존한다. 방대한 기록도 검색을 통해 쉽게 알 수 있고, 저장 비용도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폼페이에 대한 정보만 해도 구글 검색 한 번만 해 보면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신기술로 문명의 패러다임이 변하더라도, 삶의 모습은 대동소이할 것 같다. 책 속에서 어렴풋이 파악했던 로마 문명을 직접 접하고 보니, 사람 사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고, 어울림이 있고, 공동체 속에서 같이 살아가기 위해 지혜를 짜낸다. 과거의 삶의 방식을 음미할 수 있는 도시 폼페이. 만일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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