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막힌 한국벤처들···대기업 나서 '미래 황금알' 키워야

머니투데이 신아름 기자, 정현수 기자 2014.01.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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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레임코리아:도전이 희망이다]<10·끝>대기업도 바뀌어야 산다

편집자주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도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은 실업의 공포에 떨며 안정된 직장을 붙잡는데 사활을 겁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할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공무원 임용과 대기업 취업에만 목을 매는 사회는 미래가 어둡습니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2014년 신년 기획으로 <리프레임코리아: 도전이 미래다>를 제안합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청년들이 창업 등으로 도전하는 사례를 살펴보고 이 같은 도전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봅니다.

◇美 벤처기업 50.6% M&A로 엑시트...韓의 10배

세계에서 벤처 창업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실리콘밸리'의 나라 미국에서는 벤처기업의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에 의한 M&A가 보편화돼있다. 이미 궤도에 오른 대기업이 유망 벤처기업의 미래가치를 인정해주고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며 투자함으로써 견실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미국에서는 벤처기업의 엑시트 수단 중 M&A가 차지하는 비중이 50.6%를 차지했다. 그 전년도의 수치는 69.3%에 이른다. 투자자 열에 예닐곱은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지난 2009년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용자 자신과 그 친구들의 피드를 끌어와 한 번에 보여주는 서비스인 '프렌드피드'를 약 5000만달러에 인수했고, 야후는 뉴스를 자동으로 요약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인 '섬리'를 3000만달러에 사들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와는 정반대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 엑시트 수단 중 M&A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5.6%로, 미국의 10분의 1수준에 그쳤다. 이 비중은 2009년엔 31.2%였으나 2010년 25.5%, 2011년 7.4%로 해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쪼그라드는 모양새다. 투자금 회수가 힘드니 벤처투자규모가 작아지고, 벤처 창업도 활성화되지 못하는 악순환에서 좀체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 '벤처기업 M&A 관심은 있지만...'

국내 대기업들이 벤처기업 M&A에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40,100원 ▲100 +0.25%), 통신업체 SK텔레콤 (51,200원 ▼500 -0.97%)KT (36,500원 ▲250 +0.69%) 등 ICT대기업을 중심으로 벤처기업 M&A가 이뤄진 사례가 있다.

네이버는 2009년 당시 매출액 7억원이던 윙버스를 24억원에, 매출이 거의 없던 미투데이를 22억400만원에 인수했다. 2010년에는 사이냅소프트(회사 가치 50억원) 지분 30%를 15억원에 확보했고, 어메이징소프트(회사 가치 100억원) 지분 45%를 45억원에 인수한 뒤 지난해 1월 잔여지분 55%를 모두 인수했다.


다음은 2010년 픽스코리아(회사 가치 50억원)의 지분 71%를 35억원에, 인투모스(회사 가치 12억원) 지분 67%를 9억원에 인수했다. 2011년에는 핑거터치를 40억원에 인수했고, 애드투페이퍼(회사 가치 12억원) 지분 25%를 3억원에 인수했다.

SK텔레콤은 자회사인 SK플래닛을 통해 지분투자 및 M&A를 단행했다. 2011년 한국인 부부의 미국 창업 성공사례로 알려진 '비키'에 178억원을 투자해 26.2%의 지분을 확보했고, 2012년 모바일 메신저 '틱톡'으로 유명한 매드스마트를 약 160억원에 인수했다.

KT는 기술벤처를 중심으로 M&A를 진행했다. 2011년 클라우드 기술업체인 넥스알(회사 가치 70억원)의 지분 66%를 46억원에 인수했고, 동영상 검색 기술업체 엔써즈(회사 가치 450억원)의 지분 35.5%를 159억원에 인수했다.

이처럼 ICT대기업들의 벤처기업 M&A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으나 이외의 분야에서는 실적이 미미한 상황이다. 이는 우리 대기업들의 M&A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접근방식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청 벤처투자과 관계자는 "우리 대기업들의 경우 유망한 벤처기업을 M&A해서 육성하기보다는 해당 기업의 핵심 인력, 기술을 빼오거나 모방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벤처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경우 미래가치를 쉽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라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M&A에 접근해야 하는데, 국내 대기업들은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느냐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벤처기업 M&A가 대기업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M&A 막는 규제 풀어야

대기업들도 물론 할말은 있다. M&A를 하고 싶은 유망 벤처기업이 있어도 각종 규제들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등 대·중소기업 상생방안 등으로 인해 대기업 M&A가 제약받는 경우가 그렇다.

최근 네이버가 M&A를 통해 인수한 윙버스의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윙버스는 메뉴판닷컴, 스타일쉐어, 알람몬 등 벤처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해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주회사 체제 내 까다로운 증손회사 편입요건도 대기업 M&A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100% 지분을 갖고 있어야 증손회사 보유가 가능하다. 지분율이 100%가 되지 않으면 증손회사 지분규제로 인해 회사를 처분해야 한다. SK (207,000원 ▼12,000 -5.5%)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손자회사인 SK플래닛의 자회사 팍스넷과 로엔엔터테인먼트를 매각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A대기업 전략기획팀 관계자는 "지난해 말 대기업 M&A활성화를 위해 과세 유예 등의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이 개정되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벤처기업을 인수해 성장시키려면 최소 5년은 걸리는 만큼 과세 유예 기간을 더욱 늘려야하고 벤처펀드 형식의 투자가 가진 한계점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M&A 힘들다면 사내벤처 활성화로

척박한 국내 M&A 풍토를 당장 바꾸기 힘들다면 사내벤처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우선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기업이 사내벤처를 키우면서 사내 혁신을 이끌고, 창업 생태계에도 공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과거 성공적인 사내벤처의 사례가 많다. 네이버가 대표적인 예다. 네이버의 뿌리는 삼성SDS의 사내벤처다. 1992년 삼성SDS에 입사한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1997년 삼성SDS의 사내벤처인 '네이버포트'의 소사장을 맡는다. 그는 1999년 함께 일하던 직원들과 함께 분사를 결정한다. 회사 이름은 '네이버컴'으로 정해졌다.

물론 네이버가 초기부터 성공스토리를 썼던 것은 아니다. 네이버는 초창기 야후, 다음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하지만 2000년 한게임과 합병하면서 성공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지식인' 등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국내 검색포털의 절대강자로 떠올랐다. 미국 검색업체에 자국의 안방을 내주지 않은 곳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3개국 뿐이다. 사내벤처에서 시작된 네이버의 힘이다.

인터파크 (14,250원 ▼150 -1.04%) 역시 시작은 사내벤처였다. 인터파크는 1995년 데이콤(현 LG유플러스 (9,710원 ▲10 +0.10%))의 소사장 제도에서 시작됐다. 이밖에 삼성SDS의 사내벤처인 파수닷컴 (5,850원 ▼270 -4.41%), SK에너지의 사내벤처 SK엔카 등도 성공적인 사내벤처의 사례로 꼽힌다. 물론, 2000년대 초반 '벤처 버블'이 꺼지면서 사내벤처의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최근 모바일 열풍을 타고 일부 대기업과 IT업체를 중심으로 사내벤처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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