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응답하라 1994' 박찬호의 ML 20주년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4.01.25 13:16
글자크기
↑박찬호 ⓒ 사진=OSEN↑박찬호 ⓒ 사진=OSEN


‘응답하라 1994(tvN)’의 주연배우 정우는 참 겸손한 배우이다. 그는 ‘쓰레기’ 역을 맡아 열연해 단숨에 최고 스타덤에 올랐다. 미남 개성파 카리스마와 거리가 있는 훈남 스타일에,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고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그만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오랜 기간 야구 기자 생활을 하고 현재도 늘 부족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글쓴이는 ‘응답하라 1994’라고 하면 가장 먼저 ‘박찬호의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데뷔’를 떠올린다.



미 로스앤젤레스 현지 4월8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 구원 등판해 1이닝을 던졌는데 공교롭게도 박찬호는 자신의 데뷔전에서 소속팀 LA 다저스가 애틀랜타 선발 켄트 머커에게 ‘노-히트(no-hit)’ 게임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박찬호는 데뷔전 후 1경기에 더 등판한 뒤 다저스의 더블A 팀인 샌안토니오 미션즈로 내려가 대부분의 시즌을 마치게 됐다. 더블A에서 20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7패, 평균자책점 3.55, 탈삼진 100개를 기록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5년 트리플A 앨버커키 듀크스로 승격됐다.



훗날 박찬호가 성공 궤도에 올랐을 때 그는 “더블A 샌안토니오로 가라고 했을 때만 해도 곧 메이저리그로 불러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시즌을 다 마치도록 연락이 없었다”고 방황하며 초조해 했던 당시 자신을 뒤돌아보았다.

마음 속으로 간절히 ‘응답하라 LA 다저스’를 외쳤으나 LA 다저스 구단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마이너리그의 시련을 겪고 성장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박찬호 ⓒ사진=OSEN↑↑박찬호 ⓒ사진=OSEN
혼자만의 생각인지, 과연 그럴 가치나 의미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나 2014년은 박찬호(41)가 한국인으로서는 물론 아시아에서 태어난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선구자(선구자)로 메이저리그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난해 류현진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활약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연말에는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총액 1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해 은퇴한 박찬호는 적어도 ‘투수’로서는 이제 조금씩 잊혀져 가는 분위기가 됐다.


그러나 1994년 박찬호의 무모한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20년 후 마침내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투수(류현진)와 타자(추신수)가 동시에 정상급 스타로 인정 받는 황금기가 오게 된 것은 분명하다. 20년의 시간이 흘러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야구는 더 높은 위상을 정립하게 된 것이다.

아시아 출신 선수들에게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메이저리그의 문을 박찬호가 열어 제쳐버렸고 이제 뉴욕 양키스 시카고 커브스 등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우리 돈으로 1300억원이 넘는 1억달러 이상의 몸값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며 영입전을 펼치고 있다.

과연 미국의 스포츠로 야구에 대해 특별히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메이저리그의 보수주의자들은 ‘아시아 야구의 역습(逆襲)’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들이 변방(邊方)이라고 무시했던 야구였다.

오는 2014년4월8일(미국 날짜, 한국 4월9일)는 박찬호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Korean)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태어난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20주년 기념일이 된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47년4월15일은 ‘니그로(Negro)’ 재키 로빈슨이 LA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흑인(Black)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날이다.

당시 AP 통신의 기사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니그로’라는 용어가 거침없이 사용됐다. ‘재키 로빈슨, 현대 빅리그에서 플레이를 한 최초의 니그로’, ‘그 니그로는 이전의 세 타석에서 병살타 하나 밖에 치지 못했다’ 라고 무자비하게 썼다.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에서 인종 차별의 벽을 깬 선구자이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그 누구도 ‘니그로’라는 표현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블랙’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시아인을 ‘옐로우(Yellow)’라고 하는 것도 인종차별, 비하가 된다. ‘흑인’의 경우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으로 표현한다.

재키 로빈슨의 현역 선수 생활은 짧았다. 브루클린 다저스가 자신을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시킨 직후인 1957년1월5일 은퇴를 발표했다. 뉴욕 자이언츠 행을 거부하고 10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해버렸는데 ‘흑인’이었기 때문에 트레이드됐다는 의혹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해 2013 시즌 개막전 로스터 기준 메이저리그 전체 흑인 선수 비율은 사실상 최저인 7.7%에 불과했다. 버드 실릭 커미셔너의 지시로 흑인 선수들의 감소 원인을 파악하는 특별 조사위원회가 구성될 정도였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흑인 선수에게 문호를 연 구단은 보스턴 레드삭스로 1959년 이었다. 이후 역사상 최저 수치를 기록해 메이저리그에 비상이 걸렸다. 메이저리그가 흑인을 차별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흑인들이 메이저리그를 차별하는 상황이 된 것처럼 보이고 있다.

2001년 시즌 후 박찬호에 이어 추신수를 받아들인 텍사스에도 2013년 개막전 로스터에는 흑인 선수가 없었다. 당시 외국인 선수 전체 비율은 28.2%에 이르러 메이저리그의 세계화 추세가 나타났다.

2014년에는 메이저리그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인가? 용병 수를 늘린 한국프로야구는 월드컵이라는 흥행 악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박찬호는 고향 팀 한화에서 아직 공식 은퇴식을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까. 그의 메이저리그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조촐하게라도 마련될 것인가. 박찬호에게 2014년은 어떻게 응답할까?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