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효과(落水效果)를 기대하다 지쳐버린다

머니투데이 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2014.01.2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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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어느새 1월도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무플이 악플(악성 댓글보다 댓글이 전혀 없는 것이 더 속상함을 의미)보다 더 속상하다는 세속적인 표현이 1월 우리 증시를 대변하는 표현이라 하면 어떨까?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만 시작되면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미국과 유럽증시는 대체 테이퍼링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듯이 상승세를 구가하고 있다. 한국 증시가 2013년 내내 선진국 증시의 강세와 궤를 같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는 크게 어색하지도 않다.



사실 현시점에서 미국 증시를 따라 오르는 것도 크게 달갑지 않은데 이는 미국 증시가 과열이라는 논란과 함께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수익을 내지도 못하고 조정을 받게 되면 그 후유증을 극복하는 것이 훨씬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가 버블이 아니고, 버블은 터질 때까지 버블이 아니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미국 경제나 주식시장을 열심히 챙겨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한국 증시가 미국 증시와 함께 움직여 왔다는 습관적 행태가 첫 번째일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국 경제가 잘 돌아가야 우리나라 경기와 기업들의 이익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를 우리는 낙수효과(落水效果)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나아가서는 낙수효과라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경기회복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경기회복의 초점은 자국의 체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수출보다는 내수회복을 축으로 경기회복을 이끌어 가겠다는 것이 주안점이었다. 특히 미국은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주면서 에너지가격 안정을 주도해 이를 내부경기회복을 꾀하는 촉매제로 이용하고 있다.

양적 완화정책을 이용하면서도 에너지가격을 안정적인 수준에 묶어 놓으면서 물가불안 없이 경기회복을 이끌어내는데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은 무역적자 폭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무역 적자가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은 수입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주요 수출대상국의 수출 규모가 원하는 만큼 증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미국의 경제지표 개선이 우리나라까지 훈풍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원인이 아닐까 싶다.

미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미국인들이 소비를 늘리고, 이로 인해 미국이 수입을 늘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공장들이 더 많을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기대감은 불변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눈높이에 대한 조절을 하지 못한 2013년은 피로감만 누적된 꼴이었다. 이는 2014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유심히 챙겨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미국의 경제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2000년 중반과 같이 이머징 국가들의 제품을 사주는 모습을 다시 찾아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국내총생산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데 원유 수입액이 감소한 연유도 있겠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수입증가율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내 설비투자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증가하는 초기에는 일부 품목들의 대미 수출이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미국의 정책은 수입을 줄이고, 줄어든 만큼의 수입분을 자국 내에서 해결하는 수순을 밟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야 미국의 고용도 안정적으로 개선되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긴 호흡에서 진행되는 변화겠지만 변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이머징 국가에서 낮은 노동비를 적절하게 이용하던 미국 제조업체들이 다시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는 점도 작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머징 국가들의 임금이 더 이상 싸지 않다는 명분과 미국 내부적으로 세제혜택을 비롯한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의 지원이라는 실리가 제조업체들의 환류를 돕고 있다.

미국 제조업체들의 본국 이전은 공명심이나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업들이 미국 경제를 살리겠다고 본국으로 생산기지를 다시 이전시키는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화되면 결국 미국 경제 및 주식시장의 상승과 우리나라는 비롯한 이머징 국가들의 상대적 소외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지 않으면 2013년에 이어 올해도 투자자들의 피로감이 누적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잘되면 중국이 미국에 물건을 만들어 팔기 위해 원자재를 수입하면서 이머징 국가들이 윈-윈하는 과정을 기대하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결과적으로 위에 물이 고여 있어도 아래도 떨어지지 않으면 위에 얼마나 많은 물이 고여 있는지는 무의미하다.

테이퍼링 시작 이후 연일 이머징 아시아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머징 국가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이머징 국가들의 금융시장 및 경제에 불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필자도 이러한 의견에 한 목소리를 더한 장본인이다. 테이퍼링이 시작됐고 여전히 금융시장은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달러화/유로화/엔화를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여타 이머징 국가들의 통화를 보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실제로 얼음이 깨질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살얼음판이 무서운 것은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있다.

금융자본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불확실성의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불확실성이고 이런 경우에는 애써 위험을 감내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특성이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험을 가장 빠르게 체크할 수 있는 금융지표는 환율과 주가다. 유동성이 넘쳐나는 국가의 자금이 자국을 떠나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순간 맞이하는 위험이 바로 환율위험이다.

불편한 전망이 난무하는데 애써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외국인이 이머징에서 주식을 살만한 유인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챙겨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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