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테크시티에 자리잡은 구글캠퍼스 내 벽면에 창업 관련 각종 모임 등을 알리는 종이가 가득 붙어 있다/사진=박종진 기자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랐다. 연말 휴가시즌임에도 불구하고 각 층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지하 카페에는 어림잡아 150여명의 청년들이 제각각 모여 얘기를 나누거나 뭔가에 골몰해 있었다. 벽면 게시판에는 창업 동료를 찾는 광고와 각종 모임을 알리는 메시지 등이 빼곡히 붙었다. 다른 건물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친구와 수다 떨듯이 창업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간식 먹던 자리가 바로 회의장이 됐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파볼 유릭(오른쪽)과 베트남 출신의 브루스 캣이 영국 런던 테크시티 내 구글캠퍼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박종진 기자
동·서양인 짝꿍이 눈에 띄었다. 둘은 디지털 에이전시 창업을 준비 중인 동업자다. 사업모델은 오프라인 기반 사업체의 온라인 시장 진출을 도와주는 것이다. 오프라인 사업 전문가인 파볼 유릭은 슬로바키아인으로서 런던에 불과 2달 전에 왔다. 반면 온라인 컨설팅 쪽에 강점을 지닌 베트남인 브루스 캣은 런던에 산지 10년째다.
창업의 시작은 만남에 있었다. 뜻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팀'을 꾸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창업환경 조성의 열쇠다. 영국, 핀란드, 스위스 등 창업이 활발하다는 선진국에서 활동하는 창업가들이나 정책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이 점을 강조했다.
영국 정부도 발표회, 토론회 등 창업가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행사를 수없이 만들고 후원한다. 이런 자리에는 투자자들도 초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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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시티에서 전기택시서비스 업체를 창업한지 2년 째 되는 이안 미하일로비치는 "마케팅, 기술, 재무 등 서로 전문분야가 다른 10명이 팀을 꾸려 창업했다"며 "빠르고 활발한 소통과 협업이 런던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창업을 위한 최고의 덕목을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라고 말했다. 런던은 아이디어를 즉시 발전시키고 사업화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네트워크의 장을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영국 런던에서 세 번째 사업을 준비 중인 한국계 마틴 김씨가 자신의 와인투자회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박종진 기자
◇핀란드, 맞춤형 네트워크 서비스…스위스, 창업 과외선생님 전담 코치
북유럽 창업의 대표 국가로 떠오른 핀란드도 창업기업을 위한 네트워크 서비스가 발달했다.
예컨대 핀란드를 중심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발틱 지역에 20개 거점을 둔 대표적 창업지원기관인 테크노폴리스는 다양한 주선(matchmakin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분야별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갖춘 창업가들과 예비 창업가, 투자자 등을 서로 연결시켜주기 위해서다. 매주 아침을 먹으면서 짧은 담화를 나누는 '비즈니스 블랙퍼스트', 특정 지역의 창업가를 이어주는 '이웃 만나기', 인재 채용을 위한 '탤런트 토크', 관심 있는 투자자와 상담할 수 있는 '머니 토크' 등 종류도 많다.
루드밀라 니에미 테크노폴리스 이벤트담당 관리자는 "온라인으로 미리 서로의 프로필을 공유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연결시켜준다"고 말했다.
자금지원은 주로 핀란드 고용경제부 산하 기술혁신기금청(Tekes)이 맡고 있다. Tekes는 창업 단계별로 10만(약 1억4400만원)~100만 유로(약 14억40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특히 전체 창업기업 지원금 중 약 1/3을 창업 초기 단계 기업에 집중한다.
얀네 페라요키 핀란드 기술혁신기금청(Tekes) 스타트업 기업담당관이 Tekes 회의실에서 업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종진 기자
이 담당관은 "그러나 여러 좋은 창업환경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너무 춥고 어두운 겨울이 길어 외부 인력들이 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기후가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실제 핀란드의 겨울은 오후3시면 깜깜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쟁력 있는 기후는 창업인력 네트워크를 위한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실용적 문화가 발달한 스위스는 자금지원보다는 철저한 창업지도로 생존확률을 끌어올리는데 중점을 둔다. 창업지원 담당 정부기관인 기술혁신위원회(CTI)는 CTI 스타트업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법률, 경영, IT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창업 과외선생님'을, 일정 단계를 거쳐 검증받은 창업 초기단계 기업에 일종의 담임으로 붙여준다.
CTI 프로그램 출신으로 개인 음악방송 제공 회사인 레이니어를 창업한 올리버 플루엑키저 대표가 스마트폰에서 자신이 개발한 앱을 선보이고 있다/사진=박종진 기자
CTI 프로그램 출신으로 개인 음악방송 제공 회사인 레이니어를 창업한 올리버 플루엑키저 대표는 "어떻게 투자자를 찾고 창업할지 실질적인 비즈니스 계획을 만들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이 스위스에서 직접 창업하기는 쉽지 않다. 한상곤 코트라 취리히무역관장은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창업을 목적으로 비자를 취득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직접 창업보다는 파트너십 등의 방법으로 회사를 세우는 게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 관장은 창업 유망 분야로는 "미용실, 고급음식점 등 한류 관련 서비스 업종이나 스위스가 창업을 장려하고 있는 IT분야 등에서 현지 파트너를 찾아볼만 하다"고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