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패밀리세일
그러나 지난 가을과 겨울 세일을 거치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꼬리표에 견출지가 새로 붙는가 싶더니 처음에는 54만원으로, 그 다음에는 45만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카멜색 모직 코트입니다. 3년전 가을 중국의 한 공장에서 태어났습니다. 한때는 겨울철 '필수' 아이템으로 큰 인기를 누렸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백화점 매장이 아닌 경기 광주시의 한 의류창고에 처박혀 있습니다. 저는 며칠 뒤면 소각될 신세입니다.
저와 함께 아울렛 매대를 지키던 친구 '라이더 자켓'은 올 여름 시민단체에 기증됐지만 저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증이라고 해도 한 여름에 겨울의류를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또다시 창고 귀퉁이에서 6개월을 보낸 저는 올 겨울 땡처리를 노렸지만 브랜드 이미지 상 소각이 결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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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백화점 업계와 패션 업계는 저희들 같은 재고처리에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올 연말은 특히 어느 해보다 재고가 늘고 있습니다.
국내 의류부문 재고 비중은 20%로 일반 제조업 평균(9%)의 2배를 훌쩍 넘습니다. 의류산업 시장 규모가 연간 40조원이므로 저희 같은 신세가 지난해 8조원에서 올해는 9조원대에 달할 전망입니다. 특히 패션·의류 상품은 올해를 넘기면 이월상품으로 전락하고, 그 순간 몸값은 정상가 대비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이월상품 세일에서도 팔리지 않은 제품들은 제조업체 직영 상설 할인매장이나 아울렛으로 넘어갑니다. 이 경우 정상가에서 70~80% 할인된 가격으로 팔립니다. 만약 여기서도 팔리지 못하면 중량 단위로 의류를 매입하는 '땡처리' 업자에게 넘겨지거나 바로 소각됩니다.
주요 백화점마다 가을세일에 이어 창립기념 특별전, 브랜드세일, 송년세일 등을 잇따라 여는 이유도 바로 저희 같은 이월상품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백화점과 재무제표 마감을 앞두고 재고를 최소화해야 하는 제조업체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요.
패션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백화점이 제조업체에 할인행사 참여를 강요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제조업체들이 마케팅 비용을 더 낼 테니 할인 행사를 열어달라고 백화점에 먼저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