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시정신과 산문정신

머니투데이 오인태 시인 2013.12.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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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콩나물굴밥 그리고 '존재, 그 참으로 덧없어 아름다운'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시정신과 산문정신


본디 인간은 시적인 존재였습니다. 세계와 인간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 사고를 지녔다는 말인데요. 아직 이성이 덜 개입된 어린이들이 자아와 타자를 곧잘 일체화하는 물아일체의 사고를 지닌 점이나 최초의 문학양식이 시, 즉 노래였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성이 시성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려주는 거지요.

시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자연은 극복과 개발의 대상이 아니었던 건데요. 인간도 자연의 한 존재로 여기고 그 자연의 질서에 순응할 따름이었지요. 세계 속의 만물이 독립적이거나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기되어 순환한다고 보는 불교의 연기사상이나 개체가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의 개체라고 인식하며 생명이 없는 무정지물조차 불성을 지닌 중생으로 여겼던 화엄사상도 바로 시적인 인간의 시적인 사유의 결과였던 건데요.



이처럼 시적인 사유는 나와 세계를 일체화하거나 적어도 세계 속의 만물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오로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놓은 채 인간 아닌 모든 존재를 대상화하고 수단화한 건데요. 그리하여 오직 인간만의 이익을 좇으며 생명공동체의 파괴를 서슴지 않은 데서 끝내 전 지구적 위기를 초래하고 만 것이지요.

사실 이성, 또는 근대성이란 이기적인 인간중심주의의 이면에 지나지 않는 건데요. 이 인간중심주의를 견인해온 문학 장르가 바로 산문이고요. 여전히 각광받는 장르가 산문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우리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하고 그릇된 인간중심주의에 꽁꽁 묶여있음을 방증하고 있는 거지요.



산문은 바로 이 점을 비판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학 장르로서 존재가치와 이유를 지니는 건데요. 시정신이 ‘동일화정신’이라면 산문정신은 ‘비판정신’인 거죠. 내가 시를 쓰면서도 여전히 산문쓰기를 멈추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는 건데요.

만물이 서로 연기되어 순환하는 세계에서 산자와 죽은 자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시정신과 산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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