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과 2013년 '미국의 오늘'…'명과 암'

머니투데이 채원배 뉴욕특파원 2013.12.2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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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배의 뉴욕리포트]

2010년과 2013년 '미국의 오늘'…'명과 암'


# 지금으로부터 3년7개월 전인 2010년 5월. 미 국무부 주관으로 열린 '인터내셔널 비지터 리더십 프로그램(IVLP)'에 참여해 '펜서콜라(Pensacola)'라는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펜서콜라는 미국 플로리다주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에스캄비아 카운티의 행정 중심지다. 플로리다 하면 대부분이 마이애미와 올랜도를 떠 올리지만 펜서콜라는 역사가 450년이나 된 플로리다 북서부의 대표적인 휴양·관광도시다.



당시 IVLP의 주제가 '미국의 오늘'이었는데, 국무부 관계자는 "펜서콜라에서 '미국의 오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펜서콜라는 해변이 너무나 멋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름다운 해변도시를 보여 주려고 이 도시를 추천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 깨끗하고 치안이 좋은 도시에서 너무나 많은 노숙자를 볼 수 있었다.



'펜서콜라 IVLP' 프로그램 중 하나가 노숙자들에게 배식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너무나 잘 하는 노숙자들을 대거 만난 게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국무부가 펜서콜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놀라웠다.

연수중인 외국인에게 미국의 치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면 외국인들에게 한국 연수 프로그램으로 '서울역에서 노숙자에게 밥을 퍼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창이던 2010년 5월 미국의 실업률은 9.7%로 20년만에 최고였다. 당시 펜서콜라의 노숙자는 5000명 정도로, 이 도시 인구 5만여명 중 10%에 달했다.


# 2013년 12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마침내 '양적 완화 축소'를 단행했다. '돈 풀어'를 실시한 지 5년만이다. 미국의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 미국의 11월 실업률은 5년만에 최저인 7.0%로 떨어졌고, 3분기 경제성장률은 4.1%를 나타내는 등 각종 경제지표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고용과 성장률은 '서프라이즈'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에 힘입어 다우와 S&P500지수는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갔다. 올들어 12월24일까지 다우는 49번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고, S&P500지수는 43번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5거래일에 한번씩 신고가를 기록한 것이다.

양적완화가 고용 개선과 경기 회복을 위해 실시됐지만 최대 수혜자는 단연 월가와 주식 투자자들이다. 월가는 내년 1월말 퇴임하는 버냉키를 향해 '땡큐 버냉키'를 연발하고 있다.

뉴욕증시가 그동안 연준의 양적 완화에 환호한 것과 달리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해 주식에 투자할 여윳돈이 없는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증시 랠리의 수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연준이 '4조달러'라는 천문학전인 돈을 풀었지만 근원인플레이션은 여전히 1%대에 머물러 있다. 돈이 제대로 돌고 있지 않고, '윗목만 따뜻하지 아랫목은 따뜻하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월가에는 오늘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고학력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또 눈부시게 아름다운 맨해튼 야경 뒤에는 노숙자들이 곳곳에 있다.

3년여전 방문했던 미국의 지방도시 펜서콜라의 경제가 살아났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연준은 2014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최고 3.2%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최대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하지만 성장과 고용의 서프라이즈 뒤에는 여전히 어두움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최대 강국이라고 하기에는 실업자들과 노숙자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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