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도 다 알아서 시험지 구해 미국 대학 잘만 가는데요 뭘…."(유학 준비생 학부모)
각종 창구를 통해 유출된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시험문제를 놓고 학원과 일부 학부모 간 거래가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원을 고르는 기준은 오로지 '기출문제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 밖에 없었다.
B씨는 "자녀를 미국 대학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은 보통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수강료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기출문제로 강의하거나 직접 줄 수 있는지를 따져본다"며 "이 때문에 시험지를 유출해 수사받은 곳에 되레 학생들이 몰리는 기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브로커들은 덩달아 성수기를 맞고 있다. 브로커를 통해 시험지를 입수한 강사들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방학을 맞아 국내로 유턴한 '연어족'을 대상으로 문제 보따리를 푼다.
다음번 시험에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문제로 족집게 과외가 진행되는 만큼 학원비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브로커들은 학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메일 등을 통해 원장에게 '시험지 거래 여부'를 은밀하게 물어 짭짤한 수입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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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는 "얼마 전 한 브로커가 1000만원이면 원하는 시험지를 보내줄 수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며 "아마 다른 학원 원장도 비슷한 메일을 받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검찰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SAT 문제 유출 사건 수사결과, 한 브로커는 학원 등에 시험문제를 판매해 2억원이 넘는 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한국 학부모들의 SAT 열성 탓에 '시험지 유출→브로커→학원→학생→부정행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에서 본 시험 저평가 현상)'를 우려해 아예 해외 원정을 떠나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는 게 학원가의 전언이다.
강남의 한 학원 원장은 "구체적인 통계가 없어 확인이 안 될 뿐이지 가까운 일본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확실히 늘었다"며 "선의의 유학 준비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ETS는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된 학생은 최소 3년간 시험을 볼 수 없게 하는 등의 처방전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로커를 통해 입수한 SAT 에세이 문제. 태국이나 중국 등지에서 빼돌린 시험지로 추정된다.(사진=이정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