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상품이라더니' 채권상품 바로 알기

머니투데이 문홍철 동부증권 채권전략 수석연구원 2013.12.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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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철 동부증권 채권전략 수석연구원↑문홍철 동부증권 채권전략 수석연구원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권리를 위한 투쟁> 루돌프 폰 예링'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정치권력 속에서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주장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불법적으로 침해되는 한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

그의 주장에서 '법'을 '투자'로, '평화'를 '수익'으로, '투쟁'을 '리스크 관리'로 대치해 보자. 그것은 손실위험이 상존하는 금융투자 세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 철학이다.



증권사 판매 상품으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분쟁은 동양 계열사와 LIG건설 CP투자에서부터 안전하다고 여겼던 장기 국고채, 그리고 해외 상품으로까지 뻗어나가 신흥국 국채에까지 널리 퍼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10년전만 해도 개인에게 채권투자라는 것은 생소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채권시장 규모가 커졌고 개인의 자산이 축적됐다. 금융위기는 위험자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한편 저금리 시대의 도래는 은행금리 이상의 수익을 추구하는 수요를 늘렸다.



금융위기 이후 때맞춰 나타난 금리 하락추세는 안전자산의 수익도 위험자산 못지않음을 보여주었다. 선진국 양적 완화로 인한 돈 잔치는 신흥국 통화 절상 움직임을 높여 고정수익자산(채권) 투자를 환투기 상품으로 만들어줬다.

그러한 흐름이 최근 바뀌고 있다. 돌연 나타난 듯한 일부 한계기업들의 부실화도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 온 파티가 끝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파티가 끝나가고 있다.

금융 분쟁의 원인은 1차적으로 비도덕적인 동기로 부실 채권을 발행한 발행사, 2차적으로는 그러한 상품의 리스크에 대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증권사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링의 경종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투자자 또한 높은 수익률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투자 상품의 리스크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이에 대해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상품 판매자의 말만 믿고 피땀 흘려 번 돈을 투자하기에는 자본시장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채권상품은 주식투자에만 익숙하거나 손실가능성이 있는 금융투자상품 경험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여러 특성이 존재한다. 채권 투자는 다양한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2가지 주요 리스크에 노출돼있다. 금리 리스크와 신용 리스크다. 해외투자 상품이라면 여기에 환 리스크가 추가된다.

금리 리스크는 만기 이전에 상품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할 때 발생한다.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한다면 금리 리스크는 사라지지만 향후에 급전이 필요할지 사람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국채이므로 손실보지 않는다'라는 말은 '만기까지 보유한다면'이라는 중요한 전제를 빼먹은 것이다.

아무리 국가가 보증하는 채권이라고 하더라도 만기도래 이전에는 금리 변화에 따라서 국채도 얼마든지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특히 만기가 긴 장기채권이라면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변화가 크다.

가령 10년 만기 국채 1억원어치를 3.00%에 매수했다고 하자. 만약 매수한 직후에 10년 국채금리가 100bp(1%p) 상승했다고 하고 당장 급전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채권을 매도해야 한다고 하자. 채권금리와 가격은 반대이므로 이 채권 가격은 9천200만원까지 하락한다.

국채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 변화로 원금손실이 난 것이다. 물론 만기까지 보유한다면 연 3.00%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지만 중도 환매를 늘 고려해야 한다. 100bp의 금리 움직임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1년에 그 정도는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다.

금리 리스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신용 리스크이다. 금리 리스크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매입시의 수익률을 연평균으로 얻을 수 있어 리스크가 사라지지만 발행자가 파산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시장가격의 하락을 넘어 원금 전액을 잃을 위험에 노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할 때는 매우 신중한 분석에 기반해야 한다. 심지어 국가가 발행한 채권도 엄청난 손실을 내면서 상각되는 것을 우리는 멀게는 러시아 채권의 디폴트, 가깝게는 그리스 사태에서 목도하지 않았는가? 발행자의 신용상태, 현금 창출력, 채무를 갚을 의지가 있는지, 과거의 재무 행동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 후 투자에 나서야 한다.

해외채권에 투자한다면 앞의 두 가지 위험은 물론이고 여기에 환 리스크가 추가된다. 대부분의 해외채권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수익률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해외채권의 신용위험은 별도라고 하더라도 금리 리스크와 환 리스크에 의해 매일매일 가격이 변한다. 해당 채권의 잔존만기, 금리 변화, 원화 대비 해외채권 통화간의 상대 환율의 변화를 모두 알아야 대략적인 수익률 변화를 산정할 수 있다.

현재의 수익률 계산도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미래의 전망은 더욱 어렵지 않겠는가. 게다가 우리는 대한민국 원화 대비 투자한 국가의 통화가치가 중요하므로 일반적으로 말하여지는 달러대비 통화가치는 사실상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통화 가치라는 것은 그 국가의 금리, 경상수지, 성장률, 거시 건전성 등 펀더멘털 변수들을 동시에 반영하므로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투자자 개인의 충분한 조사로 어렵다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채권, 하이브리드 채권, ELS, 장기국채, 물가채 등 금융투자상품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채권시장 참여자로서 다양한 채권 및 채권파생 상품이 늘어나는 점에 대해서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투자자의 채권상품에 대한 이해는 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에 비해 부족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원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권리 위에 잠자고 있어서는 보호받기 어렵다. 투자자 스스로 투자 상품에 대해 이해하고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투자는 매우 위험하다. 투자자와 판매자의 상품에 대한 지식과 리스크 관리 능력이 동시에 발전해 균형잡힌 투자문화가 정립되는 시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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