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정상화…더이상 '신의 직장'은 없다?

머니투데이 세종=박재범 기자 2013.12.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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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정상화 대책]빚 줄이고 처우 내리고…공공기관 긴축으로 경기보완능력 축소 부작용도 우려

공기업 정상화…더이상 '신의 직장'은 없다?


올 7월 정부는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 방향'을 내놨다. 새 정부 출범 후 나온 첫 공공기관 관련 정책이었다. 핵심은 효율성. 유사·중복 기능 조정, 기관 통·폐합 등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합리화'의 구체태였다. 공기업의 부채, 방만경영에 대한 지적과 진단에 있었는데도 직접 칼을 들이대기보다 우회를 택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다시 발표했다. 정상화는 비정상을 전제로 한다. 과다한 빚과 방만경영이 비정상의 두축이다.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다. 295개 공공기관의 빚 493조원, 주요 12개 기관의 빚 412조원, 고액 성과급과 과도한 복리후생…. 여러차례 지적됐던 내용들이다.



어찌보면 공기업은 진작 수술대에 올랐어야 할 환자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역대정부에서부터 수십년간 마치 쇠심줄같이 끈질기게 이어온 만성질환"이라고 했다.

현 정부도 약간의 '실기'를 했다. 김상규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은 "합리화의 한 과정으로 정상화를 이해해달라"며 "전반적 컨센서스(합의)가 이뤄진 것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여론의 질타와 비판이 공기업 개혁의 명분이 됐다는 얘기다. 현 부총리가 '파티는 끝났가"고 선언한 시점이다.



부채 관리 중점 대상은 빚이 많은 LH공사, 한국전력 등 12개 기관이다. 부채 관리의 기본은 빚 안 늘리고 빚 갚는 거다. 빚을 안 늘리려면 하던 일도 줄여야 한다. 모든 사업의 원점 재검토다. 새 사업을 하려면 예비타당성 평가뿐 아니라 재무적 타당성도 평가받는다. 사업성이 있더라도 재무상황이 안 되면 접어야 한다. 새 사업은 수입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현 부총리는 "부채관리가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빚을 갚기 위해 알짜 자산도 팔아야 한다. '자산 평가액이 낮아져서…' 등의 핑계도 못 댄다. 자산 매각 손실에 따한 경영평가와 감사의 불이익을 면제해주기로 한 때문이다. 방만경영의 경우 '압박 전술'을 택했다.

복리후생 관련 △고용세습 △휴직급여 △퇴직금 △교육비 △의료비 △경조금 지원 △복무행태 △경영·인사권 침해 등 8대 항목을 만들어 공시한다. 마사회, 인천공항 등 20개 기관은 중점관리대상으로 분류, 관리한다. 정보를 공개하건, 계획을 세우건 결국 총대는 기관장이 멘다. 부채 감축 계획, 기관별 정상화 계획 등을 내년 1월말까지 낸 뒤 내년 3분기 중간 평가를 한다. 미흡하면 해임이다. 보수·복리 후생 관리도 제대로 못하면 최하등급을 받는다. 이 역시 해임 대상이다.


과거 노조에 줬던 당근을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 노조 반발도 기관장이 돌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파업 등도 감내한다. 과거 파업 등이 생기면 경영평가때 불이익을 받아 노조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상화 과정에서 문제삼지 않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기관장 입장에선 보수도 깎이면서 어렵고 시끄러운 일을 해야 하는 셈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공기관장 자리에 수십명씩 몰리는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며 "성배가 아닌 독배를 드는 자리, 가시방석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관장 뿐 아니라 공기업 전체에 해당된다.

방만 경영 해소는 공기업 처우 하향이다. 현 부총리는 "공공기관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우가 높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목표점은 '신의 직장'을 없애는 거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기업이 수익성, 효율성을 위해 우수인력을 영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부채 관리 등 최소한의 것만 요구된다"며 "우수인재가 구태여 공기업에 몰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결기와 의지는 읽힌다. 현 부총리는 "파부침선(破釜沈船)"이라고 표현했다. 솥을 깨어 버리고 배를 가라 앉힌다는 뜻으로 배수진을 쳤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도 수차례 강조하며 힘을 실어준 사안이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다만 실현 가능성엔 물음표가 붙는다. '낙하산' 등 조직 운영의 기본인 인사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개혁을 이뤄낼 수 있느냐다.

정책적 부작용 등 우려 지점도 적잖다. 우선 공공기관의 공적 역할 '포기' 가능성이다. 필수 공공사업마저 우선순위에서 부채 관리에 밀리다보면 사회 전반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경기 보완 기능 축소도 문제다. 정부가 올 하반기 재정 보완 대책으로 추진한 공기업 투자 확대, 공기업 투자 집행률 제고 등의 규모만 2조원이다. 경기 회복 흐름 속 공공기관의 긴축은 경기에 부작용을 줄 수 있다. 정부 한 관계자도 "공기업의 부채관리가 경기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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