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부터 '스펙 경쟁'…'극성맘'될 수밖에 없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3.11.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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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맘'공화국②]'매니저맘', '그들만의 리그'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맘' 공화국이다. 아이들은 태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맘'들이 기획한 인생을 살고 있다. 특유의 '맘문화'와 '맘경제'가 속속 출현한다. 정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맘들이 대신하면서 나타난 기이한 현상이다. 머니투데이는 신세대 '맘'들의 행태를 통해 대한민국의 육아 및 교육 현실을 고민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각종 유아 교구 및 교재, 태교책/ 사진=온라인 게시판각종 유아 교구 및 교재, 태교책/ 사진=온라인 게시판


"남들 따라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정모씨(35·여). 24개월 된 첫딸을 둔 정씨는 최근 '영사'(업체에 소속돼 영어교재를 파는 영업사원)의 설득에 못이겨 100만원짜리 영어교재를 '지른' 후 자괴감에 빠졌다. 정씨는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커주길 바라지만 나중에 원하는 걸 하고자 할 때 특목고와 일류대학이 필요하다면 미리미리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는 게 부모 역할이라 생각했다"며 "'극성'과 '방치' 사이에 중심잡기 힘들다. 불안감을 극복할 소신을 갖기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맘'들의 육아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더욱 빨리 좋은 교육환경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려는 엄마들의 움직임 속에 '그들만의 리그'에 낄 수 없는 이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육아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끼리끼리' '맘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조기교육

아이에게 좋은 두뇌와 네트워크를 만들어주기 위한 '맘'들의 육아전쟁은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영어태교강좌', '임산부 요가', '조리원' 등은 조기교육을 위한 커뮤니티다. 연예인 김희선과 정혜영 등이 다녀간 유명 조리원은 2주에 600만~1000만원대를 호가하지만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조리원 동기'는 아이가 속할 첫 집단이기 때문에 고급 조리원을 선택하는 '맘'들도 생겨나고 있다. 김모씨(30·여)는 "조리원동기끼리 백일사진도 같이 찍고 육아용품도 공동구매하고 '베페(베이비페어)'도 같이 다니게 돼 중요하다"며 "좋은 조리원 찾아 먼 동네 조리원으로 옮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출산 후엔 '문센(문화센터)'으로 이어진다.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관계자는 "외국에서 공부한 영유아 스페셜리스트가 '6~12개월', '13~20개월' 등 개월별로 감성, 신체, 언어인지를 발달시켜준다"고 설명했다. 주부 임모씨(32·여)는 "꼭 고급이 아니어도 괜찮은 어린이집, 영유아반을 보내려면 정보력 강한 엄마들과의 교류가 필수"라면서도 "백화점 문화센터에 유모차가 브랜드별로 주차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만의 리그'가 강하다'고 귀띔했다.

200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난 '맘 커뮤니티'. 최근엔 더욱 좋은 정보를 독점하기 위한 지역, 동네, 목적별 폐쇄형 커뮤니티가 늘고 있는 추세다. '직장맘' 박모씨(31·여)는 "기존 회원의 추천 없이 가입할 수 없는 카페도 많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극성맘이 되었나vs극성맘이 못돼 서러운 엄마들

조리원부터 '스펙 경쟁'…'극성맘'될 수밖에 없는 이유
육아전쟁은 양육비 부담을 늘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12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및 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 1명을 낳아 대학을 졸업시킬 때까지 들여야 하는 비용은 3억896만원(월평균 118만9000원)으로, 9년 전에 비해 56.8% 증가했다. 이중 유아기(만3~5세)는 70.7%, 영아기(만0~2세)는 69.9%로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일각에선 '극성맘'을 탓한다. 하지만 엄마들은 어쩔 수 없다며 하소연한다. 올해 청심 국제중과 대원 국제중 졸업생의 특목고, 자사고 진학률은 각각 97%, 86%에 이르렀다. 서울지역 외고의 SKY대학 진학률은 약 50%. 지난 7월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국제중 신입생 중 절반이 사립초등학교나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출신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초등학교 때 대입이 상당부분 결정되는 현 체제에서 엄마는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대열에 끼지 못하는 '워킹맘'은 죄책감을 느낀다.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명문대 진학조건으로 꼽히는 사회에서 여전히 아이의 성패는 엄마 책임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아이를 성공시켜야만 인정해주는 현실에 좌절해 '전업맘'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워킹맘' 박모씨(32·여)는 "나는 진짜 고립된 엄마"라며 "매일매일 돌보미 구하는 일이 전쟁이고 돈인데 전업맘들 문화를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 없다. 우리애만 못하고 크는 것 같으니 불안하고 미안하다"고 하소연했다.

◇'블루오션' 될 수 없는 육아전쟁

전문가들은 사회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현재의 육아전쟁이 '블루오션'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려대 김문조 사회학과 교수는 "저성장시대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100% 성공시켜야 한다는 전통적 가족주의가 강하다보니 선행교육, 유아교육, 태교까지 경쟁이 과열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입시제도와 국가정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우리 엄마는 왜'의 저자인 김고연주 박사는 "현재 대입, 취업제도는 '전인교육'을 빌미로 문화, 인적, 예술, 해외경험 등 남다른 스펙을 요구해 '매니저맘'을 둔 아이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즉 엄마가 맞벌이를 하지 않고 매니저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빠 수입이 많아야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로서는 양육에 개입하지 않고 가족에 방치하면 똑똑한 아이들이 쑥쑥 길러지니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라며 "유혈경쟁으로도 성공 가능성은 낮아 아이와 엄마가 모두 불행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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