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도입 4년]최초 노렸다 큰 코 다친 대신증권

머니투데이 유다정 기자 2013.11.0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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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합병타깃 선점했지만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주주 반대로 좌절

편집자주 비상장 우량기업의 증시 입성을 돕는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제도가 도입된 지 4년이 흘렀다. KDB대우증권을 시작으로 대다수 증권사들이 22개의 스팩을 설립했지만 정작 기업합병에 성공한 곳은 절반에 못 미치는 10곳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스팩들은 상장폐지의 수순을 밟았다. 스팩 1기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2기째를 맞은 이 제도의 허실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대신증권이 설립한 스팩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업계 최초로 합병결정을 발표했지만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주주들은 피합병기업인 썬텔이 속한 IT산업의 불확실성이 큰데도 대신스팩이 미래의 수익가치를 너무 높게 잡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스팩들은 기업가치를 평가하기가 애매한 신성장산업을 기피하게 됐고 전통적인 제조업종으로 눈을 돌렸다.



 대신증권그로쓰스팩은 지난 2011년 3월 휴대폰에 사용되는 터치스크린 패널 제조업체 썬텔과 합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합병이 성사된다면 스팩 제도가 도입된 후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었다. 통상 2개월이 소요되는 거래소의 예비심사를 한 달 만에 통과하는 등 합병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최종 관문인 주주총회를 앞두고 불길한 기운이 감지됐다. 썬텔의 기업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 스팩 펀드를 통해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은 합병 찬반을 결정하기 위해 썬텔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이 생각하는 적정 가치는 대신스팩이 제시한 수치에 도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KTB자산운용, 동부자산운용, 블리스자산운용은 2011년 6월 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 앞서 합병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대로 가다간 합병이 무산될 게 불 보듯 뻔해지자 대신스팩은 주주총회를 연기했다. 합병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썬텔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가격을 무리하게 낮춰서까지 증시에 입성하지는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스팩 도입 4년]최초 노렸다 큰 코 다친 대신증권


 2011년 8월 두 번째 주주총회가 다가왔지만 대신스팩은 결국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앞서 반대 의사를 표명한 세 곳뿐 아니라 당시에 찬성표를 던졌던 유진자산운용까지 반대로 돌아섰고 합병은 무산됐다.

 자산운용사들은 대신증권이 의도적으로 썬텔을 높게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스팩 합병이라는 생소한 방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종의 '당근'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팩 업계는 제도적 문제점 때문에 불가피하게 고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맞섰다.


 비상장기업의 가치는 본질가치(자산가치, 수익가치) 50%와 상대가치 50%로 평가된다. 이 중 수익가치를 평가할 때 자본환원율이 사용되는데 이는 기업의 미래 추정수익을 현재가치로 전환하기 위한 할인율이다. 자본환원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수익가치는 줄어든다.

 스팩 제도가 도입 됐을 당시 자본환원율은 5%였다. 하지만 2010년 8월 우회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한 네오세미테크가 분식회계로 인해 상장폐지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우회상장에 적용되는 자본환원율이 10%로 올라갔다. 스팩도 이 규정을 적용받게 됐다.

 스팩 업계는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수익가치 산정에서 손해를 보게 됐으니 어느 기업이 합병을 하겠느냐는 한탄이 들려왔다. 상장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치 평가가 자유로운 IPO(기업공개)가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전통제조업체들은 수익가치가 깎이더라도 상대가치(유사 상장법인과 비교 평가)에서 만회를 할 수 있다. 비교대상 기업들이 비교적 규모가 크고 탄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썬텔 같은 신성장 산업의 경우 비교대상 기업군이 부실한 경우가 많아서 수익가치의 하락을 만회하기가 어렵다. 썬텔의 수익가치가 깎이는 것을 막기 위해 대신증권이 의도적으로 미래 추정수익을 높게 잡았다는 의혹을 산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자본환원율에 발목을 잡힌 스팩들은 당초 목표로 삼았던 IT·바이오 기업 대신 가치 산정이 쉽고 합병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굴뚝산업'으로 관심을 돌렸다. 대신스팩과 썬텔이 기업 가치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사이 HMC스팩과 자동차 부품업체 화신정공이 국내 첫 합병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후 자동차 부품, 자전거 등을 만드는 전통적 제조업체들이 줄줄이 스팩 합병에 성공했다.

 정부는 편중된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2011년 10월 스팩에 한해서 가치산정 방식을 자율화하겠다고 밝혔고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이 스팩 시장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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