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투자증권이 설립한 하이제1호스팩은 2011년 6월 바이오디젤 업체 엠에너지와의 합병 소식을 알렸다. 하이투자증권 측은 바이오디젤 시장이 앞으로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라며 엠에너지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감을 내비쳤다. 합병결정을 발표한 다음날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조정하는 등 이미 주주총회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부국증권이 설립한 부국퓨쳐스타즈스팩은 같은 해 5월 정보보호 솔루션을 개발·납품하는 프롬투정보통신과 합병하겠다고 밝혔지만 두 달 후 거래소로부터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프롬투정보통신은 방산물자를 공급하는 방위산업체로 국가의 통신보안 체계와 관련된 연구·개발(R&D)을 진행한다. 보안 유지가 최우선으로 여겨지는 사업군에 속해있다 보니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공개 절차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솔로몬증권(현 아이엠투자증권)과 키움증권이 설립한 스팩은 제약 업체와 합병을 시도했다가 역시 거래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약가 인하 정책을 놓고 정부와 제약 업체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과 합병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무모했다는 지적이다.
키움스팩은 2011년 11월 영풍제약과 합병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영풍제약은 같은 해 7월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이미 약가 인하가 예고된 상태였고 이에 따른 매출 축소는 불가피했다. 거래소 측은 키움스팩과 영풍제약의 합병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실제로 영풍제약의 매출액은 2011년 336억원에서 2012년 304억원으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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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I앤솔로몬스팩도 같은 시기에 한국웨일즈제약과 합병을 시도하다가 거래소로부터 미승인 판정을 받았다. 미승인 사유는 영풍제약과 동일했다. 제약 업종의 불안정성과 그에 따른 수익 불확실성이다.
그때는 누구도 몰랐지만 그 후 한국웨일즈제약은 한바탕 난리를 치뤘다. 지난 9월 한국웨일즈제약이 반품처리된 의약품을 재포장해 판매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표이사와 제조관리자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만약 한국웨일즈제약이 증시에 입성했다면 스팩 제도에 대한 논란도 거세게 몰아쳤을 게 분명하다.
거래소로부터 합병 부적격 판정을 받은 기업들 중에는 ‘스팩과 합병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며 불만을 표한 기업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스팩 합병이 우회상장처럼 미심쩍은 방식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합병 심사에서 미승인 판정을 받은 후 IPO(기업공개)를 한 기업은 없다. 의욕을 앞세운 증권사들이 무리하게 합병을 시도했던 것 아니냐는 의견에 좀더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한 번 실패를 맛본 스팩들은 절치부심의 세월을 거쳤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 10월 DHP코리아와 스팩의 합병을 성공시켰다. 오는 22일 합병 신주가 상장될 예정이다. 키움증권 역시 한일진공기계와 스팩의 합병을 성공시켰고 지난달 24일부터 합병신주가 거래되고 있다. 부국증권과 솔로몬증권의 스팩은 이후 피합병 기업을 찾지 못하고 끝내 상장폐지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