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사일 지수, 영어 교육 격차 해소에 도움될 것"

머니투데이 MT교육 정도원 기자 2013.10.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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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사일 지수 개발한 맬버트 스미스 박사 방한 인터뷰

렉사일 지수의 창안자이자 이를 운용하는 메타메트릭스의 공동대표인 맬버트 스미스 박사. /사진=정도원 기자렉사일 지수의 창안자이자 이를 운용하는 메타메트릭스의 공동대표인 맬버트 스미스 박사. /사진=정도원 기자


영어 독해 능력이 대학 진학과 취업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빈부 격차가 곧 영어 독해 능력 격차로 나타났다. 가정의 거주 환경과 생활양식에 따라 그 가정에서 자라나는 취학 아동의 영어 독해 능력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획일적인 공교육으로는 이러한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없었기에 교육 과정에서 점차 뒤떨어진 가난한 아동들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됐다. "출생과 자라난 환경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왔다.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1984년 미국이 처해 있던 현실이다. 미국인의 가정환경을 연구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잭슨 스테너 박사와 맬버트 스미스 3세 박사에게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렉사일 지수(Lexile measures). 영어 독해 능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히스패닉 등 이민자 가정 아동의 영어 독해 능력과, 미국에 출시되어 있는 수많은 서적의 렉사일 지수를 측정했다. 그에 따라 학생의 수준에 맞는 텍스트를 읽기 교재로 선정함으로써 단계적으로 격차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영어 독해 교육의 토대가 되었다.



렉사일 지수의 창안자이자 이를 운용하는 메타메트릭스의 공동 대표 맬버트 스미스 박사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연구소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를 24일 오전 인터컨티넨탈 코엑스 2층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났다.

◆렉사일 지수 CCSSI에 포함… 미국 50개 주 모든 학생에 적용



스미스 박사는 "미국의 22개 주 정부 교육당국에서 공식적으로 렉사일 지수를 성적표에 표기하고 있었다"며 "이제 렉사일 지수는 주(州)간의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CCSSI(Common Core State Standards Initiative: 전국공통교과과정)에 포함되어 미국 50개 주 전역의 모든 초·중·고등학생에게 적용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의 교육 개혁이 강조된 것은 주지의 사실. 오바마 대통령 또한 몇 번이나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전미 주지사 협회(NGA)와 주 교육감 위원회(CCSSO)가 도입한 CCSSI의 핵심은 College-Career-Readiness. 즉 CCSSI에 따라 공부한 미국의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대학(College) 진학이나 직장(Career) 취업 어느 쪽으로도 준비된 상태(Readiness)에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영어가 대학 진학과 직장 취업을 좌우하는 우리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생의 렉사일 지수와 도서의 렉사일 지수 매칭… 맞춤형 독해 교육


그렇다면 이 '렉사일 지수'라는 것은 다른 수치화된 영어 평가 방식과는 어떻게 다를까. 스미스 박사는 "다른 시험들과 렉사일 지수의 차이점은 액셔너블(actionable)하다는 것"이라며 "그저 시험 점수를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교육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영문 서적의 렉사일 지수가 이미 측정되어 있다"며 "학부모나 학생은 렉사일 지수를 받았을 때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책을 읽어야 할 것이며 어떤 단계적 진전을 보일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도서의 렉사일 지수./자료제공=메타메트릭스주요 도서의 렉사일 지수./자료제공=메타메트릭스
예를 들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는 530L,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은 880L 하는 식으로 렉사일 지수가 측정되어 있기 때문에 학부모는 "자녀의 렉사일 지수가 500L이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원서로 읽어보게끔 해도 흥미를 느끼고 읽겠구나"라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쌍방향성이야말로 렉사일 지수의 최대 장점.



스미스 박사는 "미국의 대부분의 주요 출판사가 그들의 출판물의 렉사일 지수를 측정받는다"며 "스콜라스틱, 피어슨, 맥그로힐 등의 출판사가 책을 출간할 때 (렉사일 지수 측정을 위해) 책을 보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출판사들의 광범위한 참여와 이로 인하여 생성된 출판물과 텍스트의 방대한 렉사일 지수 데이터베이스야말로 렉사일 지수를 다른 수치와 차별화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스미스 박사는 "SAT Reading Part의 렉사일 지수는 1300L"이라고 밝혔다. 미국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당장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읽는 원서 수준을 렉사일 지수에 따라 자연스레 높여가며 1300L에 도달하게끔 하는 '단계적 학습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각 학년별 교과서와 수능 영어 영역의 렉사일 지수를 측정한다면 국내 영어 교육의 맞춤형 학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렉사일 회화 지수도 개발 중… ESL 고려



학부모가 자녀의 독서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어느 나라나 달리 있지 않다. 어느 책이 자녀의 수준에 맞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교 ○학년 권장 도서'라는 식으로 도서 목록이 제시되지만, 학년(연령)에 맞춘 획일적인 목록이기 때문에 정작 우리 자녀 수준에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다. 렉사일 지수의 한국어 버전이 개발될 전망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스미스 박사는 "렉사일 지수를 그들 언어의 버전으로 개발하고 싶다는 제안은 많이 들어온다"면서도 "영어를 연구, 개발하는 작업만도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한국어 버전을) 하고는 싶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렉사일 지수는 영어 버전과 에스파냐어 버전만이 개발된 상태. 그 대신 스미스 박사는 "렉사일 지수를 독해와 작문에 이어 회화에 있어서도 개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미스 박사는 "회화 개발 과정에서 L1(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과 L2(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 즉 ESL(English Second Language)의 차이점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읽고 쓰는 사람은 없다"며 "모국어에 있어서는 우선 누구나 듣게 되고, 그 다음에 '엄마' '아빠'하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되며 이후 읽고 쓰는 교육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영어를 ESL로써 배우는 경우(L2)에는 읽는 것은 곧잘 해도 듣고 말하는 것은 못하는 경우가 흔할 수 있다. 스미스 박사의 설명대로 이런 점을 고려하여 렉사일 회화 지수가 개발된다면 우리나라의 영어 회화 교육에도 일대 전기가 마련될 듯하다.



◆렉사일 지수 "한국의 영어 교육 격차 해소에도 큰 도움될 것"

내년이면 미국에서 렉사일 지수가 고안된지 30년이 된다. 스미스 박사는 "1984년에 메타메트릭스를 설립했을 때는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며 "생존의 단계를 넘어 성공이 찾아온 30주년에 이르러서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회사들처럼 해당 분야에서 큰 의의를 창출한 기업(significonce organization)이 되고 싶다"고 자평했다.

스미스 박사는 "한국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부모와 스승은 같다(군사부일체)'는 말이 있다는 것을 듣고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투자는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며,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최고의 투자 역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매체인 머니투데이에서 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며 "결국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는 나라의 실업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스미스 박사는 1984년 미국 국립보건원의 기금으로 렉사일 지수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했던 때를 떠올리며 "부유하게 태어났건 가난하게 태어났건 동일한 틀(렉사일 지수)을 통해 '성공에 대한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미국에는 '아이가 사는 환경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면서 히스패닉이나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은 영원히 그들이 사는 곳(빈민가)을 벗어날 수 없다는 풍조가 있었다"며 "렉사일 지수는 이런 상황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렉사일 지수가 범용적인 틀로써 한국의 상황에도 틀림없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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