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아우토반'위 아파트, 굉음뚫고 들어가니…

머니투데이 베를린(독일)=송학주 기자·뉴스1 김정태 뉴스1 기자 2013.10.1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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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맞춤형 주거복지시대 연다']<1-2>[르포]베를린 '슐랑켄바더'

편집자주 박근혜정부가 서민주거안정의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행복주택'이 딜레마에 빠졌다. 정부는 신혼부부와 대학생 등 사회활동이 왕성한 계층에게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임대주거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지난 5월 서울 등 수도권 도심내 철도부지, 유휴 국·공유지 등 7곳을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지정하고 1만가구를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류·가좌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5곳은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연내 착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머니투데이와 뉴스1은 행복주택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사업인지 여부와 현안을 심층 분석하고 근본적 대안을 찾는 공동기획을 마련했다. 특히 맞춤형 주거복지시스템이 잘 갖춰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현지를 찾아 정부, 지자체, 기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심층 취재했다.

獨 '아우토반'위 아파트, 굉음뚫고 들어가니…


지난 9월27일 독일 베를린 근교 '슐랑켄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이곳은 1974년부터 81년까지 독일 '아우토반' 104번 고속도로 위에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단지다. 1.5㎞ 길이에 달하는 고속도로 인공지반 위에 1215가구의 아파트동이 길게 늘어선 형태로 조성됐다.

'어떻게 저런 곳에 사람이 살까'라는 의구심을 품은 채 단지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이동했다. 먼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들이 보였다. 차들을 따라 들어가 보니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진동이 느껴졌다.



'역시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지하주차장을 거쳐 주택가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딴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동차 소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주택가 주위로 곳곳에 심어진 조경수들은 작은 공원 안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이곳은 독일 '아우토반' 104번 고속도로 위에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사진=송학주 기자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이곳은 독일 '아우토반' 104번 고속도로 위에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사진=송학주 기자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보니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주차장과 인공지반 위 주택가 사이 터널을 관통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내에선 주차장에서 느껴진 진동도 전혀 없었다. 아파트와 고속도로를 구조적으로 분리시켜 터널에서 올라오는 소음과 진동을 차단한 것이다.



태어난 후 줄곧 이 주택에 살았다는 지나마리아양(16)은 "창문을 열어놔도 자동차 소음이 전혀 없다"며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조망도 너무 좋고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단지 전경. 계단식으로 지어져 옥상은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다./사진=송학주 기자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단지 전경. 계단식으로 지어져 옥상은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다./사진=송학주 기자
한국 아파트와 비슷한 모양을 갖췄지만 꼭대기층 높이를 달리해 계단식으로 된 독특한 구조였다. 터널 상부에 위치한 아파트 3개 층은 테라스하우스로 설계됐고 건물 지붕 층에는 앞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정원이 설치돼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공원이 단지 바로 앞에 있었다. 사무실, 식당, 의료시설, 교육시설도 갖췄다. 고속도로 위에 지어진 거주시설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기까지 했다. 독일 내에서도 이 같은 인공지반 위 아파트가 드물어 TV드라마 배경으로도 가끔 등장한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단지 내엔 젊은이들을 위한 컴퓨터·요리·기타 교습시설과 배드민턴·탁구·당구장도 구비됐다. 노인들을 위해선 카드놀이, 패션쇼, 연극 등 다양한 문화활동도 진행하고 있었다.

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단지 내 상가. 상가 사이로 단지가 보인다./사진=송학주 기자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단지 내 상가. 상가 사이로 단지가 보인다./사진=송학주 기자
고속도로에서 바라보면 단지 옆면에 'DEGEWO'(데게보)라고 크게 적혀 있는데 독일 베를린에서 임대주택과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주택건설기관 가운데 한 곳이다.

외관상으론 임대주택 가운데 어느 곳이 사회주택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방 1개짜리 원룸형 주택부터 방 5개짜리 대형주택까지 다양하게 사회주택이 섞여 있다. 인근 빵집 주인은 이 단지 중 120가구가 사회주택에서 살지만 누가 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단지에서 만난 한 부부는 "15년 전 살 때는 방 3개짜리 90㎡ 주택의 월 임대료가 300유로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올라 900유로 정도 한다"며 "하지만 주변 다른 주택에 비해선 10~20%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주택 입주자는 소득기준에 따라 임대료에 차이가 있어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주변 교통시설이 좋고 임대료도 저렴하기 때문에 서로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주민 지나마리아씨(사진 왼쪽)와 그의 남자친구./사진=송학주 기자독일 베를린 근교의 '슐랑켄 바더 슈트라세(Schlangenbader strabe)' 주민 지나마리아씨(사진 왼쪽)와 그의 남자친구./사진=송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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