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선발 등판 '위원회'가 결정할까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3.10.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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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체인지업]

매팅리 감독(왼쪽)과 류현진./사진=OSEN매팅리 감독(왼쪽)과 류현진./사진=OSEN


1987년 야구 취재를 시작해 별의별 야구론을 다 접하고 들어보았지만 ‘위원회(committee) 야구’는 류현진이 제3선발을 맡고 있는 LA 다저스가 야구 역사상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1876년 내셔널리그의 출범으로 시작된 메이저리그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애틀랜타에 2승1패로 앞선 LA 다저스는 8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4차전에 느닷없이 클레이튼 커쇼(25)를 선발 등판시켰다. 애틀랜타 터너 필드에서 시작된 시리즈 1차전에서 선발 승리를 거둔 커쇼가 데뷔 최초로 3일 쉬고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단순하게 3일 휴식이 문제가 아니다. 1차전에서 90개 정도를 던졌다면 3일 쉬고도 등판이 가능하다. 그런데 커쇼는 7이닝 동안 무려 124개를 던졌다.



필자는 LA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의 1차전 투수 운용을 지켜보면서 ‘만약 홈(3, 4차전)에서 끝내지 못하면 다시 애틀랜타 원정이 되는 5차전에 커쇼를 투입해 리그챔피언십 티켓을 따겠다는 복안’이라고 단정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커쇼에게 124개나 던지게 하면서 7회까지 끌고 갈 이유가 없었다. LA 다저스는 5회말까지 5-1로 앞서 있었고, 6회초 1점을 추가해 6회말 현재 6-1로 점수차를 벌렸다. 불펜진이 7, 8, 9회 3이닝, 5점의 차이는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더욱이 LA 다저스가 1차전을 이기고 2차전(잭 그레인키), 3차전(류현진 선발 등판)을 패해 1승2패의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이 온다면 커쇼를 4차전에 선발 등판시킨다는 배수진을 쳐야 한다. 야구를 누가 알겠는가? 그렇다면 1차전에서 커쇼의 투구 수를 1개라도 더 아껴 놓아야 옳다. 그런데 매팅리 감독은 커쇼에게 124개까지 던지게 했다. 4차전에 선발 등판시키겠다는 생각을 감독 자신이 아예 접은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돈 매팅리 감독은 3차전이 열린 7일까지도 일관되게 ‘현재는 릭키 놀라스코가 4차전 선발 투수다(Right now Ricky is the pitcher I Game 4)’라고 공언했다.

매팅리 감독이 말을 뒤집자 현지 언론에서는 ‘지금은(Right now)이라는 표현이 함정이었다. 그 말을 할 때까지만 릭키 놀라스코였던 것’이라고 비꼬았다.

과거 한국프로야구에서 선발 투수 예고제가 실시되기 전에 ‘위장 오더’라는 것이 있었다. 상대 팀의 선발 투수가 우완인지 좌완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임시로 투수와 타자를 정해 타순을 교환하고 상대 투수를 확인한 뒤 선수들을 교체 투입하는 편법을 말한다. 한국이 전승 우승을 차지한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일본전에서 한국이 국제야구연맹(IBAF) 규칙에 따라 경기 1시간 전에 제출하는 예비 타순 표에 선발 투수로 우완 류제국과 1, 2번 타자로 이종욱과 이대형으로 제출했다가 경기 직전 정식 타순 교환에서 선발 투수 좌완 전병호, 1번타자 정근우, 2번 고영민으로 교체해 일본으로부터 ‘위장 오더’라고 항의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한국 대표팀의 유일한 오점이 위장 오더였다.


어쨌든 LA 다저스가 갑자기(특별한 이유 없이) 4차전 선발 투수를 우완 릭키 놀라스코에서 좌완 클레이튼 커쇼로 변경한 것은 규정 상의 문제는 없어도 무엇인지 깨끗하지 않게 보였다. 애틀랜타 선수들 중에는 ‘호텔에서 야구장 오려고 엘리베이터를 타서 변경됐다는 것을 알았다’고도 했다. 애틀랜타 선수들은 3차전에서 대패한 뒤 4차전 선발인 우완 릭키 놀라스코를 분석했을 것이고 프레디 곤잘레스 감독 역시 우완 선발을 공략할 타순 짜기에 골몰했을 것이다.

게다가 LA 다저스 릭 허니컷 투수코치는 3차전을 마친 후 ‘커쇼의 4차전 등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투수로서의 생명(어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커쇼가 25세의 ‘청춘’이어도 전문가의 관점에서 124개를 던진 뒤 3일 쉬고 다시 선발 등판은 무리 혹은 ‘혹사’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하다.

돈 매팅리 감독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선수 운용에 대한 전권은 감독이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돈 매팅리 감독 스스로 ‘보스’가 아닌 ‘졸개’가 된 것이다. 돈 매팅리 감독은 ‘거짓말쟁이’가 될 궁지에 몰리자 결국 ‘위원회(committee)의 결정’이라는 것을 실토하고 말았다. 감독이 투수코치와 상의해서 커쇼로 변경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누구인지 모르는 ‘위원회’가 확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위원회에 감독과 투수코치는 들어갔을 것이다. LA 다저스 스탠 카스텐 사장은 자신은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LA 다저스를 21억5000만달러(약 2조 3000억원)에 매입한 공동 구단주인 전설적인 농구 스타 매직 존슨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일까. 위원회는 감독과 투수 코치, 그리고 네드 콜레티 단장과 그의 스태프로 구성됐다고 한다.

뉴욕 양키스에서 23번이 영구 결번된 명 1루수 출신인 돈 매팅리(52) 감독은 그 중요한 포스트시즌 선발 투수 선정 과정에서 자신의 말까지 스스로 뒤집어 가면서 ‘위원회(committee)’의 결정에 순종(?)했다. LA 다저스는 야구를 집단(group) 결정 구조로 하는 것인지, 새롭게 등장한 ‘위원회 야구’의 실체를 알 수 없다. 만약 한국프로야구에서 단장이 선발 투수 결정에 관여한다면 감독과 선수들은 물론 팬들까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류현진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선발 등판 결정도 ‘위원회’에 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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