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해진·김범수 얼굴 보기가 마크 저커버그보다 어려운가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3.10.07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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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65> 은둔형 재벌이 되어가는 벤처창업가들

유명한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는 ‘얼굴은 김태희, 목소리는 박경림’이다. 실리콘밸리의 한국 엔지니어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외모는 고운데 목소리는 매우 허스키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보고 ‘IT계의 노홍철’라고 부르는 엔지니어도 있다. 하이 톤인데다가 말도 빠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이곳 사람들은 세계적인 거물인 이들을 워낙 자주 접하다보니 그들의 작은 습관이나 말투 하나하나까지 다 익숙해져서 더 친근해졌다.

사실, 실리콘밸리에서는 잘 나가는 기업 CEO(최고경영자)들 얼굴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심 있으면 품만 좀 들이면 된다. 신제품 론칭할 때는 직접 나와 제품을 설명하고, 각종 콘퍼런스에 나와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려준다. 하다못해, 유튜브에만 들어가도 이들의 스피치와 인터뷰가 쭉 올라와있다.



‘와이콤비네이터’ 같은 엑셀러레이터가 개최하는 창업스쿨에는 저커버그나 잭 도시(트위터 및 스퀘어 창업자), 제프 베조스(아마존 창업자) 같은 거물들이 나와서 강연을 하고 창업 준비생들의 질문을 받는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 등 대부분 CEO들은 일주일에 한번 씩 직원들과 맥주 마시며 대화를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직원들의 모질고 집요한 '심문'을 ‘디펜스’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들도 사람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단련한다. 구글은 10여년 전 에릭 슈미트 회장의 프리젠테이션 동영상을 최근 동영상과 비교해 보여주면서, '연습하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교육한다고 한다. 예전에 얼마나 스피치를 못했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이 한국벤처 CEO들보다 덜 바빠서 그렇게 얼굴을 자주 내미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의 규모가 훨씬 크다보니 결정해야할 일들도 한국 CEO들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이 커져도 스타트업 문화가 살아있어서, CEO가 서비스 개발에 깊이 관여하고 프리젠테이션까지 챙긴다. 전면에 나서 전쟁을 치르고, 외부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CEO의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CEO가 지속적으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시장에 바로 반영이 된다.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은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회사의 얼굴이다.



하지만 한국벤처들을 보면 이해진(NHN), 김범수(카카오), 이재웅(다음), 김정주(넥슨) 등 창업가들의 얼굴 보기가 마크 저커버그나 마리사 메이어 보기보다 훨씬 힘들다. 창업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고, 서비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자리에 나서는 것에 인색하다.

네이버를 쓰는 사람도, 넥슨의 게임을 하는 사람도 이해진과 김정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알 길이 별로 없다. 이건희 회장보다 더 재벌 같다는 비판도 있다.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면,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건 팔고 치우는 제조업이 아닌 이상, 사용자들이 그 가치를 더 크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라면, 외부와의 소통 역시 창업가의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벤처 문화는 기업이 좀 크면, 창업가들은 뒤로 물러나 권한만 행사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버린 듯하다. 타이틀도 바뀐다. CEO(최고경영자)가 아니라, 큰 그림을 논하고 ‘C’자 돌림의 집행 임원들을 감독하는 기능의 이사회 의장이다. 그러니 벤처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이니시스를 창업했고, 지금은 창업가들을 키우고 있는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작은 성공에 만족해 안주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뒤로 빠지게 되면) 빠른 의사결정이 어렵고, 중간단계가 많아지면서 올바른 의사결정에도 방해가 된다. 벤처의 경쟁력이 저하된다. 또, (잠수를 타는 데는) 지시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아서 어디 가서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는 것도 이유일 수 있다. 더 큰 가치나 사회적 책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제법 많은 듯하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은둔형이 된 것은 꼭 이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권도균 대표는 “외부에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시간과 돈, 기대 등 치러야 할 대가가 한국 같은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너무 크다. 차라리 안 나오고 욕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페이스북이 개최한 기자들 초청 바비큐행사. 마크 저커버그(왼쪽)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멘로파크=유병률기자 지난 8월 페이스북이 개최한 기자들 초청 바비큐행사. 마크 저커버그(왼쪽)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멘로파크=유병률기자


같은 행사에서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기자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 /멘로파크=유병률기자 같은 행사에서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기자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 /멘로파크=유병률기자
한국 같은 비즈니스환경이란, 주로 정부기관과 국회와 언론을 말한다.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참석하라는 행사, 맡으라는 자리, 만나자는 사람, 들어달라는 부탁들이 줄을 잇는다.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 네이버와 전쟁을 치를 때 “이해진 의장은 은둔만 하고 있다”고 비판을 했지만, 은둔을 하게 된 데는 이들 언론의 책임도 크다.

실리콘밸리 IT기업 CEO들이 워싱턴에 불려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필요하면 자신들이 단체를 만들고, 총출연해서 비디오도 만들어 워싱턴의 정책을 압박한다. 이민법 개혁이나 교육개혁이 그렇다. 언론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1년에 한차례 정도 기자들을 한 자리에 다 부른다. 그러나 그 만남은 오픈형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본사의 넓은 잔디밭에서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바비큐파티를 연다. 맥주를 권하고 별의별 시답잖은 이야기까지 다한다. 기자들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말실수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즐길 뿐이다.

어찌 되었든 한국의 CEO들이 기업 전면에 나서 경영을 지휘하고, 자신의 창업 경험을 사회화하는 것은 한국의 IT산업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상황이든, 일단 밖으로 나오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 본인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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