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권 및 IT 업계와 공동으로 제시한 벤처 정책자금의 양대축은 성장사다리펀드와 미래창조펀드다. 두 펀드의 규모만으로도 3년간 약 7조원에 이른다. 미래창조펀드가 창업 초기와 성장기업에, 성장사다리펀드의 경우 성장 및 후기 기업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다. 말 그대로 선순환을 위한 정책자금들이다.
성장사다리펀드는 그동안 벤처와 거리를 두고 있던 금융권이 주도하고 있다. 소관부처도 금융위원회다. 금융위는 지난 5월 성장사다리펀드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3년간 총 6조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출자기관들의 전문가들이 모여 실무작업을 진행했고 지난 8월 성장사다리펀드를 출범시켰다.
올해 스타트업펀드의 총 조성금액은 1250억원이다. 펀드 조성기간은 10년 이내로 정해졌다. 창업·초기기업에 약정총액의 40% 이상을 투자하고, 7년 이내 중소기업에 약정총액의 60% 이상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성장사다리펀드 사무국은 내년 3월에 한 차례 더 스타트업펀드 결성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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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펀드들도 속속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다. 세컨더리펀드와 재기지원펀드, 지식재산(IP)펀드 등의 경우 올해 10월 출범한다. 세컨더리펀드는 내년 3월에 한 차례 더 결성된다. 인수합병(M&A)펀드는 올해 12월과 내년 6월 각각 두 차례 진행된다. 코넥스펀드는 올해 중으로 계획돼 있다.
이들 펀드의 재원은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투자자가 각각 자금을 결성하고 개별 펀드 단계에서 자금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조성된다. 우선 정책금융기관이 3년간 총 1조8500억원을 투입한다. 출자기관은 정책금융공사(7500억원), 산업은행(6000억원), 기업은행(1500억원), 은행권청년창업재단(3500억원)이다.
지난해 출범한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은행연합회 산하 20개 금융사가 출자해 만들었다. 특히 정책금융공사 등 출자기관들은 전체 1조8500억원의 출자금액 중 5000억원을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성장사다리펀드가 장기적으로 모험자본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책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정부가 대규모의 정책금융 지원에 나서는 것은 그동안 국내 벤처 시장에 자금 수급상의 불균형이 심각하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중소기업 자금조달 금액에서 융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9%에 이른다. 벤처·중소기업에 지원되는 자금은 전반적으로 풍부하지만 '창업-성장-회수'라는 벤처의 건전한 성장 생태계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캐피탈업계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 펼쳐지면서 벤처와 중소기업의 저변은 상당부분 악화됐다"며 "그만큼 투자할 업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산업 육성 차원에서 자금이 흘러들어간다면 일종의 붐을 일으키면서 그동안 소외됐던 벤처·중소기업들의 숨통도 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벤처 1세대 출자 미래성장펀드…첨단 창업·벤처기업 육성
미래성장펀드는 은행 대출에 편중된 벤처 자금 조달체계를 투자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도입됐다. 정보기술(IT), 모바일, 헬스케어, 의료기기 등 첨단 분야의 창업·벤처기업에 집중 투자된다.
정부는 당초 5000억원을 목표액으로 설정했지만 최종 모집액은 이보다 1000억원이 늘었다. 중소기업청 산하 한국모태펀드와 정책금융공사가 각각 1000억원씩을 출자하고, 대기업과 성공한 벤처 1세대 기업, 선도 벤처기업, 연기금 등 민간부문이 4000억원을 내놓아 60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미래성장펀드의 특징은 벤처기업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대기업들이 대거 주요 출자자로 참여한 것이다. 특히 단순한 자금 투자를 넘어서 성공한 1세대 벤처기업이 후발 벤처기업의 창업·성장을 지원하고, 대기업은 벤처기업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등 패키지 형태의 지원이 이뤄진다.
먼저 6000억원 중 2000억원은 위험 부담이 높아 민간 영역에서 곧바로 투자하기 어려운 창업 3년 내 초기 기업에 투자하게 된다.
나머지 4000억원은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투자할 계획이다. 두산과 코오롱을 비롯한 대기업 출자자들이 전체 펀드의 31%인 1830억원을 모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의 기업들을 발굴해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성장을 돕게 된다.
투자 분야는 미래창조펀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IT, 모바일, 헬스케어, 의료기기, 인수합병(M&A)를 통한 업종간 융·복합 등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하되, 선도벤처 등 민간 출자자가 희망하는 투자 분야는 우선적으로 고려, 민간이 주도하는 벤처펀드로 운영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미래창조펀드가 대기업의 우수 벤처기업 M&A를 촉진, 벤처투자 생태계의 선순환 체계를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령개정을 통해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을 M&A할 경우 계열사 편입을 3년간 유예하고 기술가치 금액의 10%를 법인세에서 감면하는 등의 세제혜택도 부여할 예정이다. 또 대기업의 벤처·중소기업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 산정 때 대기업의 벤처·중소기업 출자 실적에 일부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정화 중기청장은 "미국은 구글·애플·시스코 등 대기업이 창업기업을 육성하고 M&A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선순환 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돼 있다"면서 "미래창조펀드를 통해 대기업과 성공한 벤처기업이 창업·벤처기업 투자와 육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반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성장사다리펀드와 미래창조펀드 외에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십시일반으로 사업자금을 조달받는 방식으로,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품앗이 펀딩'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주로 후원·기부형, 대출형, 투자형으로 구분된다. 후원·기부형은 주로 영화 등 예술분야의 사업자금 조달 과정에서 무상으로 후원금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대출형은 대부업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서 이자를 지급하게 된다. 정부가 주목하는 것은 투자형이다. 창업기업 등에 투자하면서 지분을 취득하거나 배당을 받는 방식이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제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크라우드펀딩 중개업무를 주관하는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를 신설하고, 이들 중개업자를 규율할 예정이다.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는 5억원 가량의 필요자본을 갖추고 금융위원회에 등록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정부는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자금을 모집할 경우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해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현재 크라우드펀딩 도입을 포함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시행령 등 하위규정을 정비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크라우드펀딩 제도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