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지수정, 불씨를 끄지는 못했지만 잘한 결단

머니투데이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2013.09.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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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새누리당 비난 자격 없어..여권도 '공약먹튀' 비판 감내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기초연금을 만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다는 공약에서 후퇴해서 소득 하위 70%에게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언론에 발표되면서 야당에서는 '공약 먹튀'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런 비판은 당연해보이지만, '자식을 사랑할수록 떡보다 매를 주라'던 조상들의 지혜를 생각하면, 비록 문제의 불씨를 없애진 못했지만, 공약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잘한 결단이다.

재정민주주의의 의미
대선 과정에서 절대적 지지를 확신하지 못한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표를 사기 위해 '선거뇌물'을 경쟁적으로 뿌렸다. 부자들만 증세해서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정책이든, 증세를 하지 않고 지하경제에 과세를 해서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정책이든 현실적 정책적 대안들은 아니었다. 결국 국민들에게 올바로 제시할 정책적 대안이란 첫째 높은 조세부담과 높은 복지지출과 둘째 낮은 조세부담과 낮은 복지지출 중 택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해 대선에서도 선심성 정책만 홍보하고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얼버무림으로써 국민들은 자신들이 부담해서 얻게 되는 혜택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공짜로 얻게 되는 것으로 착각했다. 사실 재정(財政)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의 실현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출이 국민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수준을 넘지 않게 한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국민들이 실제 세금을 내어 지지할 뜻이 없는 복지지출은 그래서 진정한 국민의 뜻이라고 볼 수 없다. 소득세율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은 자신들이 부담해야 한다면 구태여 복지지출을 원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미끄러운 경사(Slippery Slope)
대선에서 더 큰 공짜 복지를 약속한 민주당이 새누리당을 “공약 먹튀”라고 공격하는 것은 전쟁터에서 100보를 도망간 병사가 50보를 도망간 친구를 비난하는 격이지만, 새누리당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 50보를 도망간 것은 사실이다.



소득하위 70%에 대한 차등지급으로 바꾸고 새누리당에서 “다음 세대에 빚을 물려줄 수 없다”고 해서 다행이다. 그러나 세수가 늘어날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하위 70%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해도 필요자금이 2017년까지 3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이로 인해 국채가 발행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더구나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보장과 같은 공약은, 수명연장과 의료기술의 발전을 감안할 때 향후 나라 곳간을 빚으로 도배할 가능성이 높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 수혜 폭을 줄이기는 정치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복지지출은 한번 올라타면 곤두박질치기 쉬운 미끄러운 길(Slippery Slope)이다. 이를 개혁하려면 전 사회가 세대간, 계층간 커다란 홍역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

솔직한 사과는 신뢰감 줄 것
주기로 했다가 주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약속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그러나 약속이 무리임을 알면서 이를 고수해 국민들의 진정한 이익을 해치는 건 더 나쁘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민들에게 “사랑하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재원대책도 없는 복지에 길들여져 ‘신용불량자’신세가 되게 할 수 없다.”고 사과한다면, 많은 국민들은 신뢰감을 느낄 것이다.


'신용불량자'아들을 위해, 아침마다 아들과 함께 신문배달을 한 어머니처럼 국민들의 진정한 이익에 맞게 공약들을 조정한다면, 국민들은 원망하기보다는 고마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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