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길만 찾아다니는 멍청한 역주행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2013.09.23 08:11
글자크기

[웰빙에세이] 이미 난 길은 내 길이 아니다

꽉 막혀 주차장이 다 된 길에 꼼짝없이 갇힐 때가 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88올림픽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에서…. 중간에 샐 수도 없어 오도 가도 못할 때 아, 그 갑갑함, 그 답답함! 와중에 반대편 길이 훤히 뚫려 있으면 더 열 받는다. 핸들을 확 돌리고 싶다. 아니 그 길로 직진해 짜릿한 역주행을 하고 싶다.

나 혼자 거꾸로 달리는 짜릿한 역주행



사실 내가 지금 사는 방식이 역주행이다. 남들 일하러 갈 때 놀러 가니 그게 역주행이다. 평일에 놀면 진짜 노는 맛이 난다. 그것은 꽉 막힌 반대편 길을 바라보며 유유히 달리는 것이다.

춘천 다녀오는 길목에 있는 집다리골 자연휴양림. 화악산 깊은 골인 그곳이 너무 좋아 최근 일주일새 세 번을 갔다. 산자락을 천천히 감고 도는 임도가 예술이다. 대한민국에서 손꼽을 만한 아름다운 숲길이 그곳에 숨어 있다. 나는 금요일 낮에 갔다가 홀딱 반해 주말인 다음 날 또 가고, 다다음 날인 화요일에 또 간다. 금요일엔 조용하고, 토요일엔 부산하고, 화요일엔 고요하다. 산도 비고, 물도 비고, 길도 비고, 주차장도 비고, 좋은 자리도 비고…. 모든 게 내 것이다.



삶이 몹시 번잡해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던 10여 년 전의 어느 봄날, 집다리골에 온 적이 있다. 나는 주말 새벽, 무작정 인적 없는 의암호를 끼고 달리다가 춘천댐을 지났고 '집다리골'이란 표지판에 이끌려 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었다. 아! 그때 그 계곡의 물, 새벽 공기, 숲의 향기, 아침 햇살, 연둣빛 녹음… .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매일 달리던 노선과 차선을 미친 듯 슬쩍 벗어나 거꾸로 달리는 역주행이었다. 그때의 전율이 뇌리에 박혀 화천에 와서도 저곳이 분명 10여 년 전의 그곳일 텐데 하며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집다리골은 나의 역주행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집다리골은 나에게 속삭인다. 남들과 똑같이 몰려다니지 마라. 그 길은 복잡하다. 그 길은 속 터진다. 그 길은 골치 아프다. 그 길은 너의 길이 아니다.

다같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갑갑한 역주행


나는 모범생이었다. 한 번도 말썽을 피우는 역주행을 하지 않았다. 남들 가는 길에서 어떻게든 앞서 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 붐볐다. 부와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길! 그 길엔 기는 놈, 걷는 놈, 뛰는 놈, 나는 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온통 뒤섞여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한 합을 겨루든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반칙과 새치기가 즐비했다. 그 길에서 밀고 밀치며 사느라 참 고단했다. 높은 문턱을 기어오르고,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가느라 청춘의 에너지를 다 바쳤다.

그러다가 나이 쉰에 멈춰 섰다.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가봐! 나는 솔직히 겁이 났다. '이 길로 더 가면 나는 추해질 것이다. 쓰러질 것이다. 크게 후회할 것이다.'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이 경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돌아섰다. 역주행을 시작했다. 사표를 내고, 일을 놓고, 귀촌을 했다.

그런데 시골에 와서 살아보니 이 길이 내 길이다. 걸어도 뛰어도 놀아도 쉬어도 누가 뭐라 않는 길, 편하고 자유로운 길, 나를 나답게 드러내는 길, 진정한 나에게로 가는 길! 그러니까 이 길은 역주행이 아니다. 도심의 혼잡한 도로에서 곡예 하듯 달리고,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속 터져 하던 것이 역주행이었다. 나를 거슬러 가는 험한 역주행이었다. 나는 참 바보다. 어쩌자고 널찍한 길을 놓아두고 북새통 길로 찾아들어 고달픈 역주행을 했는가.

내가 느끼기에 좋은 길이 내 길이다

나는 나에게 행복한 길이 아니라 남들 보기에 행복한 길을 갔다. 당연히 그 길에 나의 행복은 없었다. 나는 엉뚱한 길에서 행복을 찾느라 지지고 볶으며 고난과 역경을 헤쳤다. 코미디 같은 역주행으로 인생을 낭비했다. 이제 알겠다. 남이 보기에 좋은 길이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좋은 길이 내 길이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그 길로 가는 것이 정상 주행이다. 그 외의 길은 다 역주행이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면 그 뒤에 놓이는 길이 내 길이다. 그러니 그 길은 단 하나뿐이다. 이 세상에 내가 오직 하나이듯 나의 길도 오직 하나다. 이미 난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혹시 지금 꽉 막힌 길에 있는가? 이 길을 어찌 빠져 나갈까 막막한가? 이럴 때는 그냥 참고 기다리는 게 낫다. 경험적으로 그렇다. 이리저리 궁리해 봤자 뾰족한 답이 없다. 옆길로 새 다른 길을 타도 나중에 보면 그게 그거다. 거북이처럼 기어가나 다람쥐처럼 돌고 도나 결과는 비슷하다. 하지만 꽉 막힌 길을 다 나온 다음에 그 길로 되돌아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혹시 그러고 있는 게 아닐까? 막힌 곳을 피하겠다고 열심히 머리 굴리지만 실제로는 막히는 길로만 찾아드는 게 아닐까? 그 곳에서 눈빛 살벌한 고수들과 뒤섞여 다투느라 생고생을 하는 게 아닐까? 반칙과 새치기에 능한 달인들을 살피고 피하느라 골머리를 썩는 게 아닐까? 다들 한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니 나도 그 쪽이 옳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 그 길에 몰린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를 거스르는 역주행을 하는데도 자기는 정상 주행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코미디다. 거대한 착각이다. 그런 길에서 내가 눈빛 살벌한 고수가 되도, 반칙과 새치기에 능한 달인이 되도 나에게 삶은 두렵고 지겨운 것이다. 나는 결국 나만의 길에서 이탈한 삶의 탈락자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