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개발 파산 D-3' 주민들, 문닫고 이사가고…

뉴스1 제공 2013.09.02 11:20
글자크기

코레일, 5일 1조원 갚고 토지 등기이전시 백지화

=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촌2동의 한 주민이 이삿짐을 싸고 있다.  News1 박응진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촌2동의 한 주민이 이삿짐을 싸고 있다. News1 박응진 기자


총 사업비 31조원 규모인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최종 파산 카운트다운 3일을 남겨둔 가운데 주민들은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사업 철회에 따른 후폭풍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용산개발사업이 결국 좌초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지도 오래라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조만간 파산할 것이라는 소식에 주민들은 담담한 분위기였지만 사업 정상화라는 일말의 희망도 안고 있다.



◆'용산개발 파산 D-3' 주민들, 문닫고 이사가고

지난달 29일 오전 강한 소나기까지 내려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곳곳에 들어선 낡은 건물들은 시위라도 하듯, 용산구 이촌2동이 긴 세월 동안 개발되지 못했다는 점을 알리고 있었다.



지난 4월 이촌2동을 찾았을 때와 같이 이날 영업 중인 상가보다는 폐업한 곳들이 대부분이었고 문을 연 상가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용산개발이 결국 좌초될 것이란 분위기가 퍼지면서 주민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최종 사업 철회에 대비하고 있다. 김희자씨(60·여)는 이달 말이면 16년째 운영해온 호프집의 문을 닫는다.

빌딩 주인이 가게세를 절반으로 깎아주겠다고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노릇이다. 김씨는 "하루에 맥주 한 잔 못파는 경우가 허다해 한 달 60만원의 가게세를 감당할 수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또 "내 가게가 위치한 도로변에만 모두 16개 상가가 있었는데 지금은 3곳 밖에 안 남았다"며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용산개발이 결국 좌초될 분위기여서 정든 호프집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촌2동에 있던 상가 250여곳 중 아직까지 영업 중인 상가는 90여곳이다. 그나마 버티던 90여곳도 최종 사업 철회 결정이 나오면 이촌2동을 떠날 것이라고 김씨는 내다봤다.



김씨는 그동안 용산개발을 위해 노력도 많이 했던 터라 다른 주민들보다 절망감이 더 크다. 그는 "변호사를 찾아가 자문도 구하고 대선 직후 인수위 앞, 서울시 앞 등지에서 1인 시위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최종 파산 분위기가 퍼지면서 그동안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너무 억울하다"며 "드림허브가 파산할지 지켜보겠지만 이제는 지칠대로 지쳤다"고 한탄했다.

국제업무지구가 들어설 것이란 소식에 주택을 구입했던 주민들도 발길로 돌리고 있다. 이날 정호성씨(64)는 슬하의 1남2녀 자녀들과 함께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정씨는 "향후 좋은 아파트라도 장만해볼 생각으로 목돈을 마련해 5년 전 이곳에 주택을 마련했지만 꿈이 깨졌다"며 "정부와 기업의 말만 믿고 들어왔는데 3000만원의 빚만 생겼다"고 말했다.

또 "좀 더 버텨보려 했지만 집 값이 6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나는 등 이제는 글렀다고 생각해 효창동으로 이사를 간다"며 "누가 이곳에 투자를 하겠느냐. 이제는 돈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이촌2동의 한 빌라.  News1 박응진 기자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이촌2동의 한 빌라. News1 박응진 기자
◆주민 정신적·물질적 피해…손해배상 청구소송



용산개발의 운명이 벼랑 끝에 선 가운데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입은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트레스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주민도 많다. 김희자씨는 "남자들은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분들도 많다"며 "주민 대부분이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재철 서부이촌동 11개 구역 대책협의회 총무는 "주민만 고스란히 손해를 보고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며 "길거리에 나앉고 신용불량자까지 되는 주민들이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한 80대 주민은 은행에서 8억원을 빌린 후 원금 상환 압박에 제2금융권을 찾았다가 이촌2동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김 총무는 전했다.

김 총무는 "2011년 가을 2300가구의 평균 빚이 3억5000만원이었다"며 "서울시도 재산상 피해가 있었다고 인정한 만큼 용산개발이 최종 무산되면 마지막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마지막 수단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주민들은 지난 2007년부터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박찬종 법무법인 한우리 변호사의 도움으로 서울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일말의 희망도…"보상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지난 3월 금융이자 52억원을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던 드림허브는 5일 땅 주인이자 사업 최대주주인 코레일이 그동안 받았던 토지대금 중 최종 잔금 1조원을 상환하면 파산을 맞는 동시에 용산사업도 최종 청산된다.

일부에서는 코레일이 토지대금을 상환하되 토지 소유권에 대한 등기이전만 미루면 드림허브의 파산을 막아 용산사업의 최종 부도를 막을 수 있고 이달 말 신규 선임될 코레일 사장이 사업 진행 여부를 전면 재검토한 뒤 결정하자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김재철 총무는 "새로운 코레일 사장이 사업 진행 여부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길 바란다"며 "사업이 정상화된다면 금융권 압박을 받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보상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업 초기 이뤄진 금융권의 과다대출로 대부분 주민들이 빚을 떠안은 상황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보상금 지급이 이뤄져야 주민들의 숨통을 틀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김희자씨는 "용산은 긴 세월 동안 발전하지 못했다"며 "새로운 코레일 사장은 서울에 이만한 크기의 땅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수익성을 다시 한 번 따져보고 용산을 서울의 얼굴로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어 "용산개발이 무산된다면 이촌2동은 얼마 안 있어 주민들의 투신이 이어지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용산의 2300가구도 한 번 쯤 돌아봐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뉴스1 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뉴스1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