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전인 6월23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문화제에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최루액이 뿌려졌다. 집회에 참가한 고교생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루액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시위 당시 10여년만에 본격적으로 재등장했다.
한국에서 '최루'의 의미는 독재정권의 탄압과 동일시 됐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탄압을 통해 출범한 전두환 정권은 최루탄·최루액 등 '최루 정권'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최루탄·최루액 등 최루는 정권 차원에선 유쾌하지 않은 결말을 가져왔다. 4·19 혁명의 도화선은 최루탄이었다. 1960년 4월 11일 오전 실종 28일 만에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된 김주열군의 시신 가운데 눈에서 뒷머리까지 길이 20cm의 미제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은 대한민국의 쓰레기통에서 민주주의를 피어나게 한 도화선이 됐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전두환 정권도 1987년 6월 연세대에서 벌어진 집회에서 발사한 최루탄에 맞아 이한열씨가 숨지면서 6·29 선언 등을 발표하며 민중의 힘에 밀려 한발 물러서야 했다.
경찰청은 2010년부터 현재 사용되는 최루액 성분인 파바(PAVA)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2010년 구입 예산은 1억원(1680ℓ)이었지만 2011년 예산은 2억7000만원(4200ℓ)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집회 해산에 최루액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에 경찰이 단호함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경찰은 한 가지 잊은 게 있다. '최루'에 의존하는 공권력은 권위를 잃는다는 사실이다. 무더운 여름, 눈물의 최루액 대신 대화와 타협이 있는 집회 문화가 그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