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이 보수적이면 안 되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3.08.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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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멘토다]38. '설국열차' + '죽지않아'

젊은층이 보수적이면 안 되는 이유


#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인 43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설국열차'(감독 봉준호)가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서 질주하고 있다. 봉 감독의 전작 '괴물'의 13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설레발까지 나온다.

이 영화는 빙하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설국열차에서 탄압받는 꼬리칸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열차의 핵심인 맨 앞의 엔진칸을 향해 전진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설국열차는 화제성만큼 이런저런 논란도 많다. 우선 거대배급사에서 지나치게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거센 비판이 나온다.

또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신작 '뫼비우스'가 선정성을 이유로 두번이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가 3분여 가량을 잘라내고 겨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건 것과 달리, 설국열차가 잔혹한 폭력장면이 나오는 데도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데 대한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 설국열차는 작품성에 대한 평가에서도 설왕설래가 오간다. '(봉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은유나 비유없이 이야기가 너무 직설적이다', '후반부가 늘어지고 결말이 다소 모호하다' 등 혹평도 만만치 않다. 반면, '보편적이고 단선적인 캐릭터를 잘 배치해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구성했다', '양극화가 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울림있는 메세지' 같은 호평도 다양하게 나온다.

앞서 장하준 교수가 그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만든 질서를 강요하고 후발주자의 발전을 막는 기득권층의 위선적 행태에 대한 이 영화의 비판적 시선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국열차는 전 세계 개봉을 염두에 둔 글로벌 프로젝트라 이야기를 한국적 상황에만 딱 맞추진 못했지만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꼬리칸 사람들이 엔진칸 기득권층의 부당한 지배에 반기를 들어 혁명을 하지만, 막상 혁명 이후 체제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은 우리사회의 무능한 진보진영을 떠올리게 한다. 또 지금처럼 불평등한 분배를 계속 강요하다가는 결국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보수층에게도 던진다.


젊은층이 보수적이면 안 되는 이유
# 그런데 설국열차와 달리 직접적으로 한국사회의 이면을 우화적으로 그린 영화가 지난 8일 개봉해 눈길을 끈다. 황철민 감독이 만든 '죽지않아'가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수십억 재산을 가진 '수구꼴통' 할아버지의 유산을 탐낸 손자가 시골생활에 지쳐가다 할아버지를 복상사시키기 위해 젊은 여인을 접근시킨다는 발칙한 내용을 담고 있다. '수꼴 할배 복상사 프로젝트'가 이 영화의 홍보문구다.

이 영화엔 요즘 젊은 세대 가운데 보수화되는 이들이 왜 늘어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영화 속에서 미래에 대한 꿈이 없는 손자는 할아버지가 죽으면 유산을 받아 그저 편하게 놀고먹을 생각밖에 없다.

하여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에겐 "해준 게 뭐냐"며 대들지만 자기 재산과 핏줄밖에 관심이 없는 할아버지에겐 한 없이 순종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가 한심하면서도 손자가 무슨 짓을 해도 끝까지 끌어안는다. 이 영화에 나타나는 물질과 혈연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보수적 자화상은 일견 섬뜩한 느낌까지도 준다.

"젊어서 진보가 아니라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 보수가 아니라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이 죽지않아의 손자처럼 기득권에 기대어 안주하려고만 든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 설국열차의 엔지니어 남궁민수(송강호)처럼 열차 앞 칸이 아니라 열차 바깥으로 나가려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도전하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 벌판으로 뛰쳐나가도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야 도전할 마음도 생기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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