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ze] 아트 인큐베이팅│뮤지컬, 사람이 미래다
ize 장경진 기자
2013.08.08 09:25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음악으로 풀어낸 워크숍 현장. 지난 7월 15일, 각국의 대사관이 즐비한 동빙고동에 뮤지컬배우와 프로듀서, 업계 관계자, 일반관객 100여 명이 모였다. < 모비딕 >의 조용신 연출가와 의 김문정 음악감독이 만든 새로운 창작뮤지컬 < 도리안 그레이 >를 보기 위해서였다. 1주일 후 한예종에서는 < 셜록 홈즈 >의 두 번째 시즌 < 셜록 홈즈: 잭더리퍼의 부활 >이 공연됐다. 하지만 포털사이트에서 두 작품을 검색해도 이들의 공식적인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워크숍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중의 눈에 뮤지컬은 비싸거나, 과장된 연기로 비웃음을 사는 장르로 인식된다. 하지만 한 달 평균 2~3편의 공연을 보는 이들에게 가장 핫한 공연은 종로의 두산아트센터, 광흥창역 CJ 아지트, 동빙고동의 프로젝트박스 시야에 있다. 관객에게는 소위 ‘레어템’, 창작진에게는 실험실인 ‘아트 인큐베이팅’ 시장이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창작팩토리’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현재는 공공기관과 민간재단을 포함한 10여 개의 사업을 통해 한 해 동안 총 30여 개의 작품(신작뮤지컬에 한해)이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한 뮤지컬업계 종사자는 “기회적 차원에서 호시절도 이런 호시절이 없다”고 말한다. 2001년 < 오페라의 유령 >을 시작으로 뮤지컬산업이 급물살을 탔다. 2004년에는 당시 떠오르는 스타였던 조승우가 < 지킬 앤 하이드 > 초연에 캐스팅되면서 대중친화적 장르로 성장했다. 뮤지컬을 업으로 삼겠다는 ‘뮤지컬키드’가 부쩍 늘어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이후 수많은 라이선스 작품이 브로드웨이 종연과 동시에 한국에서 공연됐다. 하지만 토니상에서 언급된 작품들은 다수의 국내 제작사가 라이선스 경쟁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레 로열티 상승으로 이어졌고, 지난 10년 새 웬만한 라이선스는 모두 소개 되었다. 공급이 많아지면서 ‘라이선스=흥행작’이라는 공식도 깨지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대안으로 창작뮤지컬에 주목했고, 2010년 두산연강재단과 CJ 문화재단이 새롭게 ‘아트랩’과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트 인큐베이팅 시장이 본격화됐다. 금전적 지원 뿐 아니라 공간, 캐스팅, 홍보, 피드백에 이르기까지 작품 전반에 참여하는 본 프로그램은 창작뮤지컬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동 중이다.
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한 소프트웨어 6.25를 배경으로 여섯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는 두 차례의 공개 워크숍을 거쳐 현재 본공연이 진행 중이다. < 모비딕 >, < 풍월주 >, < 심야식당 >, < 여신님이 보고 계셔 >, < 트레이스 유 >, < 날아라 박씨! >는 인큐베이팅을 거쳐 관객에게 소개된 창작뮤지컬이다. 아트 인큐베이팅이 주목받는 데는 모든 시작의 주체가 창작진이라는 점에 있다. < 심야식당 >의 정영 작가는 “작품이 제작사에서 시작되는 경우 일정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쫓기기 마련이다. 창작진끼리의 작업은 굉장히 불안하고 어렵지만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다”고 말한다. < 도리안 그레이 >로 SK행복나눔재단의 지원을 받은 조용신 연출가는 계약에 주목한다. “작품개발비를 개런티로 받았고, 워크숍 계약을 별도로 했다. 재단 측에서는 본공연에 대한 우선협상권만을 갖기로 했는데, 만약 SK행복나눔재단과 본공연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별도의 계약을 해서 로열티를 받게 된다. 굉장히 나이스한 계약이고 이 부분은 창작진에게도 자극이 된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 < 모비딕 >의 경우 워크숍 공연이 연기경험이 전무한 배우들의 단련장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적게는 2회부터 많게는 10회까지 일반 관객들에게 오픈된 워크숍은 공연 장르에 관심 있는 관객들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피드백으로 이어지고, 이는 창작진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어 본공연에 반영된다.
창작진의 최종목표는 결국 본공연의 성공이다. 그리고 공연의 시작은 투자에서부터다. 하지만 현재의 아트 인큐베이팅은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아트랩의 경우 두산아트센터를 통해 공동제작 형식으로 본공연이 가능하지만, CJ E&M 공연사업부의 경우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 소개된 작품에 대한 우선협상권조차 없다. 워크숍 이후 제작사가 붙은 경우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심야식당 >의 김동연 연출은 “개발단계는 3년 정도로 길었지만, 본공연 자체를 완성시키는데는 2달여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간 관객을 만났다. 외국에서는 이 기간을 프리뷰 기간으로 인식하지만 창작뮤지컬에서 누가 그것을 용납해주느냐”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때문에 아트랩의 남윤일 PD는 지속성에 주목한다. “아트랩에 참여한 아티스트는 지속적으로 팔로잉하며 꼭 우리극장이 아니더라도 다음 단계를 함께 모색한다. 이 외에도 단계별로 작품을 개발할 수 있는 촘촘한 프로그램, 재원, 꾸준한 사업의지가 필요한데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말한다.
반면,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조용신 예술 감독은 지원 프로그램에 앞서 창작진의 기본기와 개성, 사회적 분위기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도제식이었던 10년 전에 비해 지금은 뮤지컬 창작진을 꿈꾸는 사람도 많아지고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하지만 본공연으로 이어지는 선례가 많지 않다. 특히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어도 기본기가 부족한 창작진이 많아 그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지만, 한국 뮤지컬의 역사가 짧고 중견 스태프 층이 얇다보니 가르칠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게다가 창작진의 개성이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고, 사회적으로도 여유와 위트가 전혀 없다.” 다수의 뮤지컬학과, 민간교육기관인 스파크, 인터파크 스탭스쿨 등의 아카데미도 생겨났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구축되면 구축될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콘텐츠 그 자체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자국민에게 암살당한 대통령의 이야기를 으로 풀어냈고, 쇼맨십 강한 존 칸더는 자신의 쇼를 암울한 시대에 넣어 < 시카고 >와 < 거미여인의 키스 >를 만들었다. 작품은 아티스트 그 자체다. 신선한가.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가. 지속 가능한 이야기인가. 결국 다양성은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아트 인큐베이팅이 사람을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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